신년 벽두인 1월5일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은행과 상점을 약탈한 데 이어 국제공항까지 파괴했다. 이들은 대통령 퇴임 후에도 실권을 휘둘러온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완전한 퇴진을 요구했지만 실상 시위를 촉발한 요인은 따로 있었다. 가뜩이나 물가로 고통받는 와중에 정부가 2일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을 2배 인상하자 정부에 대한 응축된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외신에서는 치솟는 식품 가격 등이 도화선이 됐던 ‘아랍의 봄’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17일 튀니지의 한 과일 노점상 청년이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한 것에서 시작됐다. 비민주적 정치 제도와 관료들의 부패 척결을 외친 시위대에 23년째 집권하던 엘아비딘 벤알리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했다. 이른바 ‘재스민 혁명’이었다. 시위는 예멘 등 주변국의 민주화 바람으로 이어졌다. 이 나라들의 민심을 끓어오르게 한 것은 고물가와 실업난이었다. 아랍 국가들은 전체 식량 소비의 56%를 수입에 의존하는데 2007년부터 빵을 비롯한 식량 가격이 폭등하자 들고 일어난 것이다. 페루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소토는 “아랍에 가장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라기보다 자본주의”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수그러들 것처럼 보이던 ‘아랍의 봄’은 2019년 초 수단에서 다시 벌어졌다. 빵 한 덩어리 값이 한 달도 안 돼 세 배나 폭등하자 국민들은 30년 절대 권력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에게 맞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실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여러 나라에서 ‘아랍의 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5위 밀 수출국으로 지난해에 밀 1,800만 톤을 수출했다. ‘아랍의 봄’을 경험한 예멘과 리비아는 물론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14개 국가가 밀 소비량의 10% 이상을 우크라이나 산에 의존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식량 위기를 불러와 밀 수입 국가들의 정정 불안으로 번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강대국 간 패권 갈등을 키울 뿐 아니라 ‘나비 효과’로 식량 문제 등을 일으키며 또 다른 형태의 신흥국 복합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때다.
<김영기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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