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존 유언장 내용 존중해야” 명시, 장수가 최고 덕목이던 문화에 파격
▶ 존엄사 논란 ‘덩밍젠 사건’ 11년 만, 중국 전역으로 입법 확산 가능성도
‘존엄한 죽음인가, 무의미한 연명인가’
중국 광둥성의 선전시가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존엄사(회복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가 연명 목적의 치료를 거부하는 행위)’를 허용하고 나섰다. 죽음 자체를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중국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선전시의 이번 입법은 상당한 파격이다.
17일 중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선전시는 이달 초 ‘선전특구의료행위 규정 개정안’을 도입했다. 개정안 78조는 “의료 기관은 치료 불가능한 질병에 걸린 환자에 대해 환자 본인이 작성한 ‘생존 유언장’에 담긴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생존 유언장이란 의료 행위에 대한 환자의 요구 사항을 담은 문서다. 또렷한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작성되어야 하며, 가족의 동의를 거쳐 사전에 공증도 받아야 인정된다. 환자가 “의미 없는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생존 유언장에 남겼을 경우 인공호흡기 삽관이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개정안은 내년부터 시행된다.
중국에선 존엄사 문제가 오랜 기간 공론화되지 못했다. ‘장수’를 최고의 복으로 여기는 동시에 ‘훌륭한 죽음보다 고생스러운 삶이 낫다(好死不如惡活)’는 인식이 강한 탓에 존엄사라는 단어조차 생경한 편이다. 베이징에서 존엄사 인정 캠페인을 벌여온 트레이시 왕은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죽음의 의미를 배우지만, 대부분 종교가 없는 중국인들은 삶에 대한 교육은 받는 반면 자신이 맞아야 할 죽음에 대해선 고민해볼 기회가 처음부터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 논쟁을 처음 촉발한 것은 2011년 중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덩밍젠 사건’이다. 당시 광저우에서 18년간 노모의 병을 수발해온 아들 덩밍젠은 어머니에게 살충제를 먹여 숨지게 했다. 노모가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으니, 살충제를 먹고 죽게 해달라고”고 간청했기 때문이다. 모친을 죽인 패륜아라는 비난 속에서도 존엄사 허용 여론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다.
이후 ‘생존 유언장 제도’ 도입 운동 단체인 베이징유언장장려협회가 2013년 설립됐고, 지난해 선전에서도 ‘생활유언장협회’라는 곳이 설립되며 연명 치료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의 지지를 얻었다. 선전시가 중국 전역에서 존엄사를 허용한 최초의 도시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 언론들은 선전시가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됐다며 존엄사 허용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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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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