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 그게 뭐더라?”
가드닝 좀 한다니까 사람들은 궁금한 식물을 보면 내게 이름부터 묻는다. 다행히 내가 아는 것들일 때는 큰소리로, 묻지도 않은 그 식물의 특징까지 보태어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나라고 다 알 수 있겠는가! 아니, 솔직히 모르는 게, 알았었는데도 이름을 잊어버릴 때가 허다하다. 게다가 한국 이름과 미국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해서 설명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저 이름을 잊었을 뿐인데, 뭔가 물으려던 사람들도 내가 식물 이름에서 주춤거리면 벌써 그 눈빛에서 신뢰가 사라진다. 한땐 그게 싫어서 내가 놓쳤던 식물 이름 외우러 가든 센터에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마치 학창 시절의 주입식 교육 같았다. 실전에 부닥치면 다시 맥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그게 말이지…”를 되뇌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나이 들어 반짝거리지 못하는 머리 탓하며 슬퍼할 필요는 없다. 식물 이름을 찾는 앱까지 쓰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의 구글 렌즈나 네이버 렌즈 검색으로 누구나 그 자리에서 이름을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을 찾기가 수월해졌다 해도 난 종종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꼭 맞는 것인지 망설이곤 한다.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아침의 찬란함을 온 힘 다해 나팔로 부는 것 같은 “나팔꽃” 또는 “Morning glory”는 동서양 이름 어떤 것으로 불러도 좋다. 하지만 수탉의 벼슬 같다 하여 붙여진 “Cockscomb”은 한국 이름 “맨드라미”보다 꽃을 상상해 내기에 수월하니 영어 이름이 편하다. 또 꽃 모양이 먹을 묻힌 붓 모양 같다 해 붙여진 한글 이름 “붓꽃”은 그리스 신화 속, 무지개의 연인인 이리스에서 유래한 영어 이름 “Iris”와는 느낌이 많이 달라 이 꽃은 상황에 따라 섞어 부른다. 또 많은 꽃들이 아침에 피고, 저녁이면 오므라드는데 비해 낮에 피는 꽃들도 있는데, “분꽃”이 그렇다. 오후 4시쯤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고, 영어 이름이 “Four o’clock”인데 실제로 옛날엔 사람들이 이 꽃이 피는 것으로 시간을 가늠했다고도 한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식물의 이름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꽃들은, 나무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좋을까? 사람들이 맘대로 붙여 준 그 이름이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랑의 눈으로 관찰하지 않고서는 부칠 수 없는 게 또 그 이름들일 테니 그들도 그리 크게 싫다거나 마다하진 않길 바라본다. 그러니 곱다, 아름답다 눈으로만 보지 말고, 가끔은 큰 소리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자.
<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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