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억울한 분들이 많다. 회사 발전을 위해 충심으로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유별난 사람으로 찍혀 좌천된 사람.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이젠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보상금도 적어 억울하다는 사람. 한평생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며 아끼고 살았는데, 나이 먹었다고 말 좀 그만하라고 해서 속상한 노인 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우울과 불안이 가라앉은 후에도 지속되는 억울함이다. 내 고생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않는 가족ㆍ직장ㆍ사회에 대한 분노도 함께한다. 많은 이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화를 표출할 대상을 찾곤 한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말에는 왜 나만 이해받지 못하냐고 항변한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사람의 감정을 기쁨ㆍ두려움ㆍ혐오ㆍ분노ㆍ놀람ㆍ슬픔 등 6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보편적 기본 감정 이론’을 제안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감정 인식 기술도 이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양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라는 ‘7정(情)’으로 나눴다. 최근 국내에서도 기계 학습을 통해 인터넷ㆍ소셜미디어에서 나타나는 사회 감정을 분류해 특정 사건 전후 지역사회의 감정을 파악하는 정신건강 모니터링 작업을 시작했다.
감정은 동요하고 빠져들기 쉽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주인공이 만난 주정뱅이는 창피함을 잊기 위해 항상 술을 마신다. 시작이 뭐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제 술을 마시는 게 창피하다고 말한다.
내 감정에만 빠져 있는 사람도 비슷한 자기 연민에 빠져 악순환을 반복하곤 한다. 간혹 분노와 슬픔은 강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달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삶의 동기를 강하게 유지하는 에너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동요하게 만들고 분노와 공포 반응을 일으키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목적은 위로나 공감이 아니라 대중의 감정을 이용해 본인이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내가 느끼는 분노와 슬픔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들었지만 왠지 편하고 익숙한 그 느낌을 내 것이라 여기고 이유와 논리는 나중에 덧씌운 것일 수도 있다.
감정은 그대로 드러내면 안 된다. 그 이유는 우선 인간과 동물과 중요한 차이점이 지성과 절제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ㆍ중국 등에서는 용기ㆍ절제ㆍ정의ㆍ지혜를 인간의 미덕이라 칭했다. 맹자도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이를 스스로 절도에 맞게 다스리면서 ‘삼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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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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