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와 세대를 넘나들며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은 미국의 전설적 가수 토니 베넷이 고향인 뉴욕에서 별세했다. 향년 96세.
홍보담당인 실비아 웨이너가 21일 베넷의 별세 사실을 확인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정확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 2016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고 5년 뒤인 2021년 공개한 바 있다.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로 잘 알려진 그는 20세기 중반부터 70년 넘게 활동하며 팝과 재즈 보컬로 명성을 떨쳤다. 평생공로상을 합쳐 수상한 그래미만 20개에 이른다.
1932년 8월 3일 뉴욕시 퀸스의 아스토리아에서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앤서니 도미닉 베네데토다.
불과 10살 때 부친을 여의고 가난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모친이 재봉사로 세 아이를 먹여 살려야 했고, 결국 16살 때 학교를 중퇴한 베넷은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엘리베이터 운전원, 세탁소 직원, AP통신 원고 심부름꾼, 노래 부르는 웨이터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1944년 육군에 징집돼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후에도 가수의 꿈을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던 베넷은 가수 펄 베일리의 요청으로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한 클럽에서 그와 같이 공연하면서 일생의 기회를 잡았다.
우연히 무대를 본 코미디언 밥 호프의 눈에 들면서 호프의 무대에서 오프닝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호프의 제안으로 예명을 '조 바리'에서 '토니 베넷'으로 바꾼 그는 대형 음반사 컬럼비아레코드와 계약하고 '비코즈 오브 유', '콜드 콜드 하트', '랙스 투 리치스' 등의 팝 히트곡을 내며 1950년대를 풍미했다.
당시 베넷의 공연에는 소녀팬들이 객석을 메우고 비명을 질러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팝의 전설이었던 프랭크 시내트라가 그를 “업계 최고의 가수”라고 극찬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62년 곡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는 빌보드 차트 19위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나중에 큰 인기를 끌며 그와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노래가 됐다.
베넷은 1950년대 후반부터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와 협업하는 등 팝에서 재즈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으로 평가된다. 본인은 스스로를 '재즈 가수'로 생각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1970년대 들어 결혼 생활 파경과 코카인 중독, 거액의 세금 체납으로 바닥을 찍었던 베넷을 다시 살린 것은 아들 대니였다.
대니는 매니저를 맡아 젊은 세대에 부친의 음악을 알리는 마케팅에 주력하고 당대 스타들과의 듀엣, 음반 작업 등을 주선했다.
덕분에 베넷은 1995년 MTV 언플러그드 앨범으로 '올해의 앨범상' 등 2개의 그래미를 받는 등 평생공로상을 제외한 19개 그래미상 중 17개를 60대 이후에 수상했다. 생전에 낸 음반만 70장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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