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마쳤다. 머리 빠져서 나 닮은 배우 숀 코너리가 나온다는 그 영화로 보고 말 것을 굳이 영어판으로 읽느라 욕봤다.
그럼에도 명불허전, 시종 흥미진진했다. 워낙 많이들 좋아하는 책이라 내가 더 얹을 말은 없을 것 같고 옛 기억이 떠올라 좋았던 것 하나만 적어보자면, 사건의 발단인 ‘예수님의 웃음’이다. 눈 먼 수도사 호르헤가 그토록 완고하게 부인하던.
이민 초년기에 다니던 교회에서 주보에 넣었던 웃는 예수의 흑백 초상이 떠올랐다.
젊어서부터 몸이 좋지 않아 수수깽이처럼 깡마른 담임목사님은 몸을 괴롭히는 신병에도 안면에 늘 미소를 띄었다. 취미가 웃는 건가. 어쩌면 웃어야 아픔을 잊을 수 있어서였을 게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서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을 법 한데 담임목사가 그 그림을 넣자면서 꺼낸 성경구절은 마가복음이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그런 근사한 말씀 뒤에 예수님이 굳이 덧붙여 마무리한 이 대목!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이건 분명코 웃기려고 던진 멘트 아니냐는 담임목사의 주장에 나도 웃음으로 동의했다. 세상에 똥얘기에 안 웃을 이 없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그 일이 생각나서 그림을 찾아봤다. 나온다! 1973년 윌리스 위틀리라는 화가가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에 바친 네 장의 스케치 중 하나였다. 원제는 ‘해방자 그리스도(Christ the Liberator)’인데 ‘웃는 그리스도(The Laughing Christ)’로 더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족보 있는 그림이었군. 그래도 교회 이름이 과문하여 더 찾아보았다. 총! 연합! 그런 거창한 이름 달수록 속이 부실한 집단들을 워낙 많이 보아와서다.
다행히 그런 허장성세가 아니고 캐나다의 주류 개신교임을 알 수 있었다. 너른 땅에 드문드문 흩어진 마을에서 장로교다, 감리교다, 회중교회다 하여 따로 모여 교회를 차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세 교단이 합친 역사를 덤으로 알게 됐다. 알아봤자 영육간에 하나 도움 안 되는 잡식만 늘어나지만.
그림으로 돌아가서, 똥 얘기 하면서 저렇게 호탕하게 먼저 웃으신 거라면 좀 벌쭘하기는 하다. 상대가 혹 조크인지 모를까봐 화자가 먼저 웃는 건 아무래도 하수인데. 예수님 웃기는 건 저한테 한 수 배우셔야겠어요.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웃음은 겸연쩍어, 쑥스럽게 웃는 웃음이다. 손님들 대접한다고 부엌에서 종일 기름냄새 찌들며 전 붙이다가 마침내 터진 마르다가 예수님 섭섭해요 하고 따질 때 미안한 마음에 실실 쪼개며 달래시던 그분, 나는 그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난다.
외노자들의 하소연에, 아무리 애완이라고 해도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단호히 외면했던 예수님. “하오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가나안 여인에게서 한 펀치 먹고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슬쩍 말 돌리던 예수님은 분명 그런 멋적은 미소를 하였을 것이다.
<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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