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 스토리
▶ 돈 부족한 손님에겐 외상을
▶EBT 소지자에겐 반값 할인
▶지역사회에 아낌없는 도움
▶업주 대니박씨 건강 나빠져
▶LAT도 ‘공존의 공간’ 다뤄
지난 2021년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에서 대니 박(맨 오른쪽)씨와 어머니 메이 박(맨 왼쪽)씨가 고객들과 반갑게 인사하던 모습. [박상혁 기자]
LA 다운타운 홈리스 밀집지역인‘스키드로우’의 한복판 5가와 샌피드로에 위치한 작은 마트인‘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이 LA 한·흑 커뮤니티 간 화합과 공존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18일 LA타임스가 집중 조명했다. 한인 2세인 대니 박(39·박재민)씨가 운영하며 ‘스키드로우의 오아시스’로 불리던 이 업소를 노숙자들을 위한 흑인 비영리단체가 인수해 운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피플스 마켓은 스키드로우 텐트촌에 사는 노숙인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이곳에서는 샌드위치와 신선한 야채 과일과 같은 식료품과 휴대용 버너, 속옷 등 생활필수품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더운 여름에는 얼음을 팔고 추운 겨울에는 양말을 파는 등 거리의 고단한 삶에 꼭 필요한 품목을 세심하게 구비해 놓고 있다.
EBT 카드 소지자는 50% 할인 혜택도 받는다. 직원들은 마켓을 찾은 손님들에게 친구가 되거나 조언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리치료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업주 대니 박씨는 손님들에게 건강하고 저렴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돈이 부족한 손님에게는 외상으로 물건을 주거나 돈을 안 받고 음식을 제공하는 등 일반 마켓 주인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여 왔다. 피플스 마켓을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닌, 커뮤니티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박씨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마켓을 운영하며 박씨의 건강이 나빠져 결국 마켓 운영이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씨는 높은 값을 쳐주는 누군가에게 가게를 넘기는 것이 아닌 스키드로우에서 활동하는 흑인 비영리 단체 ‘크리에이팅 저스티스 LA’에 가게 인수를 권유했다. 박씨는 이러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피플스 마켓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가게로 계속 남을 수 있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크리에이팅 저스티스 LA의 창립자 스티븐 큐 제인-마리 목사는 스키드로우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박씨가 만든 피플스 마켓의 서비스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제인-마리 목사는 “현재 마켓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내보내지 않을 것이며 커뮤니티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은 원래 대니 박씨의 부모 메이·밥 박씨 부부가 ‘베스트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상점이었다. LA 폭동으로 한인 업주들의 피해가 극심하던 때 스크린 인쇄업을 하던 그의 부모도 파산하게 됐고 1995년 스키드로우 지역의 마켓을 인수했다. 생활고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1984년에 태어난 대니 박씨는 이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겪었고 두순자 사건이 전국적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다. 폭동으로 인한 사업 실패 후 술에 취하는 날이 많아진 그의 아버지는 급기야 2018년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패사디나 아트센터를 졸업한 후 포틀랜드의 나이키사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박씨는 2015년 부모님으로부터 마켓을 물려받고 2018년 부친이 사망하자 ‘베스트 마켓’을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으로 상호를 바꿨다.
외벽을 밝은 색으로 페인트칠 했고 마켓 앞에 붙여진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 ‘환불 불가’ 사인 위로 ‘평등’ ‘스키드로우 커뮤니티는 스스로 치유하고 건강한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안전한 공간’과 같은 고무적인 문장들을 함께 붙이기 시작했다. 스키드로우 한복판의 작은 마켓을 치유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첫걸음을 뗀 것이다.
박씨와 제인-마리 목사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피플스 마켓이 흑인이 이끄는 비영리단체가 인수해 한국계 미국인의 철학을 이어나가는 지금의 상황이 한·흑 갈등 치유와 화합의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피플스 마켓의 소유권 변경이 완료되기까지는 최대 3개월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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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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