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신 오하시 다리의 소나기(왼쪽)’와 반 고흐의 ‘빗속의 다리’.
비 내리는 풍경은 화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고는 하지만 빗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은 흔하지 않다. 서양미술에서는 주로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이나 비 온 뒤 피어오른 물안개 등을 통해 비의 정취를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반 고흐는 1887년 10월께 빗줄기의 형태가 선명하게 드러난 매우 독특한 동양풍의 그림을 제작했다. ‘빗속의 다리’라는 제목을 지닌 이 작품은 고흐가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작업하던 시기에 그려졌다.
이 그림의 화풍은 자포니즘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이는 19세기 후반 서구 사회에서 유행했던 일본 미술에 대한 취향과 모방 양식 그리고 수집 문화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다.
자포니즘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문화적 현상이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일본 정부의 공식 사절단이 참가하면서 일본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프랑스 사회 전반에 확산됐다.
그중 우키요에(浮世繪)라 불리는 채색 판화가 프랑스 모더니즘 화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 에도시대에 서민 계층에서 유행했던 우키요에는 주로 명소의 풍경과 세속적 풍속을 주제로 제작된 목판화다.
고흐는 우키요에의 대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1857년 작 ‘에도 명소 100경, 신 오하시 다리의 소나기’에 감명을 받아 이 작품을 유화로 재현했다.
고흐의 ‘빗속의 다리’는 원작의 구성과 매우 유사하다. 우타가와의 목판화에 구현된 파격적인 구도와 생동감 있는 표현 기법 그리고 강렬한 색채 대비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다른 점을 찾자면 그림 가장자리에 한자로 된 문양들이 첨부되고 전체적으로 색상이 밝아졌다는 것뿐이다.
또 한 가지 미세하지만 흥미로운 차이점은 고흐의 그림 속 빗줄기가 푸른색을 띠고 있는 점이다. 푸른빛의 빗줄기는 하늘과 구름의 색채와 결합해 한여름 쏟아지는 소나기의 청량감을 시각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모방 속에 자신만의 색감을 덧붙인 고흐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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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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