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고용해주세요. 수강생 중 저만 빼고 모두 취업했어요.”
스포츠용품 대기업 나이키의 한 관계자는 1988년 미국 오하이오대 대학원의 스포츠 마케팅 수업에 출강한 후 어느 졸업 예정자로부터 끈질긴 채용 구애를 받았다. 6개월에 걸친 요청에 결국 인턴직을 줬다. 그 졸업 예정자의 이름은 엘리엇 힐이다. 힐은 입사 후 고향 텍사스주 등을 누비며 중소 소매점에 신발을 팔러 다녔다. 얼마나 열심히 발품을 팔았는지 당시 몰던 미니밴의 주행거리가 연간 6만 마일(9만 6561㎞)을 넘었을 정도다. 싱글맘으로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로부터 근면함을 배운 것이다. 그는 성실함 덕분에 꾸준히 진급해 영업을 책임지는 컨슈머앤드마켓플레이스 담당 사장까지 역임하고 2020년 은퇴했다.
힐은 퇴직 4년 만에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깜짝 컴백했다. 실적 위기에 처한 나이키가 19일 존 도나호 CEO 후임으로 힐을 선임했다. 힐은 서민 가정 출신 ‘흙수저’다. 1963년생으로 젊지 않고 학력도 화려하지 않다. 텍사스 크리스천대에서 운동학을 공부하고 오하이오대에서 스포츠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명문대 경영학 석사(MBA) 출신들이 여러 기업을 옮겨가며 경력을 쌓다가 대기업 CEO에 오르는 경우가 일상적인 미국에서 32년 근속한 힐의 발탁은 이례적이다. 경영 위기 탈출을 위해 인재의 ‘페이퍼 스펙’보다 ‘검증된 실력’을 중시한 것이다.
앞서 이베이 CEO 출신 도나호는 2020년 나이키 사령탑에 취임한 뒤 원가 절감을 강조하다가 제품 품질 혁신 경쟁에서 뒤처졌다. 도소매상을 통한 판매를 줄이고 온라인 직판 등으로 수익을 높이려다 유통망을 붕괴시켰다. 2021년 최고 2768억 달러였던 시총은 현재 1200억 달러대까지 떨어졌다. ‘구원투수’로 기용된 힐은 32년간 마케팅 현장을 뛴 관록으로 판매망을 복원하고 제품 혁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기대감에 18일 80.66달러였던 나이키 주가가 20일 86.52달러로 마감됐다. 스펙보다 실력으로 인재를 뽑고 단기 재무 성과에 치중하는 탁상 경영보다 발품 파는 현장 경영으로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할 때다.
<민병권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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