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워싱턴지부(지부장 박공석, 이사장 김조명)는 충북대 박정미 교수를 초청해 지난 26일 워싱턴한인커뮤니티센터에서 북토크를 개최했다.
박 교수는 “1963년 대한뉴스에 소개된 합동결혼식 사진을 보고 이와 관련된 궁금증이 생겼고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1년간 조지워싱턴대에서 풀브라이트 방문학자로 있으면서 영문으로 발간한 책 ‘국가의 성: 해방 후 한국의 성매매와 나라 만들기’는 방대한 역사자료를 통해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1960년대 부랑자 단속에 나선 한국정부는 청년들을 잡아들여 충남 서산의 간척사업에 투입했으며 이는 80년대 삼청교육대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개입된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다. 또한 여성들의 경우에도 윤락방지법에 따라 선도, 보호, 갱생 등을 목적으로 잡아들여 ‘부녀보호지도소’ 또는 ‘여자기술학교’ 등 사실상 감옥과 같은 수용시설에 수감했다.
1963년의 합동결혼식은 부랑자로 잡힌 청년과 전직 윤락여성을 정부가 강제로 맺어준 이벤트였다. 박 교수는 “당시 정부의 인식은 여성은 무조건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타락하게 된다고 생각해 사회적 약자인 이들을 결혼시키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며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인권유린, 국가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치부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윤락여성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의심되는 누구나 잡아들였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도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뇌물을 주고 풀려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폭력과 굶주림 속에 수감생활을 버텨내야만 했다. 죄수도 아닌 이들은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몰매를 맞기도 했고 심지어 사망자도 발생했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고 기록도 남아있지 않는 이들은 정부의 외면 속에 잊혀져갔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수용시설 또한 이들의 희생으로 이익을 창출했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전무하고 그저 당한 사람만 억울할 뿐이었다.
박 교수는 “시대가 바뀌고 이러한 사실을 밝히기 위한 연구도 진행됐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나서지 않았다”며 “부녀보호지도소 출신이라는 것은 결국 윤락여성, 창녀라는 낙인이 되기 때문에 억울해도 참고 살아갈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91년 부녀보호지도소에 수감된 한 여성이 위헌소송을 제기하자 다급해진 정부는 1996년 윤락방지법을 개정해 소송을 무산시켰다. 이어 2014년 피해여성들을 중심으로 국가배상소송이 진행됐고 배상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치는 최소한의 배상이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교수의 책은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피해 여성 4명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또한 정부 발표나 언론 자료, 관련 논문,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남아있는 당시의 흔적 등을 찾아내 자칫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해방 이후 한국은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 냈으나 빠른 시간 내 이루어낸 한국 근대화의 배경에는 누군가의 희생,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한류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다”라며 “부끄러운 역사라고 감추기 보다는 당당히 밝히고 책임을 지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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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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