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당시 구글 엔지니어로 일하던 마누 굴라티와 존 브루노는 창업에 의기투합했다. 데이터센터 서버용 칩을 개발하는 반도체 개발 회사를 만드는 게 지상 과제였다. 두 사람은 과거 애플 근무 시절 휴대폰용 반도체를 함께 개발했던 제러드 윌리엄스 3세를 합류시켜 준비 과정을 거친 뒤 2019년 스타트업 ‘누비아(Nuvia)’를 창업했다.
누비아는 출범 이듬해 시장 격변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2020년 9월에는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 서버용 칩 등을 개발하려고 세계 1위 반도체 설계 기업 암(ARM) 인수 추진 계획을 밝히더니 11월에는 애플이 자사 노트북에 인텔 반도체가 아니라 자체 개발 반도체를 사용하기로 했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독과점 문제로 불발됐으나 이런 공룡급 기업들이 자체 개발로 반도체를 조달하면 누비아와 같은 칩 설계 전문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수 있었다. 위기를 절감한 누비아 경영진은 퀄컴에 2021년 3월 14억 달러의 몸값을 받고 회사를 넘겼다.
퀄컴 품에 안긴 누비아는 또 다른 시련을 맞았다. 퀄컴에 반도체 설계 도면 등을 제공하던 ARM이 2022년 9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누비아가 ARM의 명령어 집합체(ISA)를 활용해 반도체를 개발했던 게 발단이 됐다. ISA란 사람이 작성한 프로그램을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기계어로 전환시키는 시스템이다. ARM은 자사의 ISA를 기반으로 설계된 누비아의 반도체 설계를 퀄컴이 사용하려면 라이선스 계약을 다시 맺고 합당한 비용을 내라고 요구했다.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배당된 재판은 약 2년 3개월 만인 이달 20일 퀄컴·누비아의 승소로 결론 났다.
누비아가 겪은 인수합병(M&A)과 기술 라이선스 소송전은 격변하는 첨단산업 생태계에서 기존의 분업 구조와 기술 동맹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우리가 생존하려면 자생력 있는 반도체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반도체 제조 공정 기술을 고도화해 파운드리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고, 칩 설계 및 관련 소프트웨어·소재·장비 등에서 경쟁력 있는 원천 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민병권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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