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0월 24일 주가 폭락을 신호탄으로 미국 경제가 대공황의 늪에 빠졌다. 기업들이 쓰러지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정부는 경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정책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국가 경제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지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 의회는 경제 현황을 진단하고 대처하기 위해 러시아 출신 경제학자인 사이먼 쿠즈네츠에게 국민소득을 추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34년 국내총생산(GDP) 개념이 만들어졌다. ‘한 국가 영토 내에서 일정 기간에 생산한 재화 및 서비스 시장가치의 합’을 뜻하는 GDP는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국가 경제 규모를 측정하는 표준 지표로 자리잡았다. 이 덕분에 쿠즈네츠는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1999년 미 상무부는 GDP가 ‘20세기 최고 발명품’이었다고 선언했다.
■80여 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 지표로 인정받아온 GDP가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소비 지출, 민간 투자, 정부 지출, 순수출을 합해서 산출하는 GDP 계산법 변경을 검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연방 정부 구조조정을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정부 지출을 제외해야 더 정확한 GDP를 측정할 수 있다”고 운을 떼자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정부 지출을 GDP에서 분리해 더 투명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급격한 예산 삭감과 관세 전쟁 여파로 미국의 경기 악화가 예고되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가 GDP 지표를 흔들기 시작하자 ‘정치적 목적의 데이터 조작’이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미국이 관세 폭격의 부메랑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고물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제시한 1분기 미국 GDP 성장률 전망치는 -2.8%에 그쳤다. 트럼프의 GDP 통계 개입은 미국 경제가 처한 위기의 방증일 수 있다. 트럼프발(發) 경제 리스크에 면밀하게 대비해야 할 때다.
<신경립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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