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부터 땅까지 온통 보랏빛이다. 지중해 연안에 주로 피는 라벤더가 강원 동해시 회색 계곡 사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40여 년간 국내 최대 규모의 석회 광산이었던 이곳은 1만8,100㎡(약 5,500평)의 라벤더 물결이 일렁이는 무릉별유천지로 바뀌었다. 2021년 11월 개장 이후 지난 22일까지 72만9,000여 명이 다녀갔다. 지난 14~22일 열린 라벤더 축제에 8만5,000여 명이 몰리는 등 이색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무릉별유천지를 최근 찾았다.
■ 회색 폐광에서 보랏빛 꽃밭으로무릉별유천지는 1968년 쌍용양회(현 쌍용C&E) 동해 공장이 석회석을 캐던 광산이었다. 2017년 광산으로 수명이 다할 때까지 45년간 1억6,000만여 톤의 석회석이 채광됐다. 채광으로 107만㎡의 가파른 계단식 절벽으로 둘러싸인 두 개의 호수가 생겼다. 폐광이 결정되자 해당 부지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2020년 쌍용양회가 부지를 기부 체납하면서 관광지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동해시는 배수가 잘 되는 석회질 토양에서 잘 자라는 라벤더를 심어 이색 풍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최호진 동해시 무릉별유천지조경팀장은 “약알칼리성의 석회질 토양 덕분에 라벤더를 주력으로 심었다”고 말했다. 전북 고창이나 정읍 등 전통적인 라벤더 명소도 있지만 무릉별유천지 라벤더 작황이 유독 좋은 편이다.
올해부터 야간 개장을 선보여 더 인기를 끌고 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보랏빛 라벤더가 끝없이 펼쳐지는 마법 같은 풍경이 여행객의 시선과 발길을 사로잡는다. 두 아이와 함께 대전에서 온 정효린(36)씨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을 마주해 감동스러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 광산 호수에선 ‘라벤덕’ 타볼까라벤더밭을 중심으로 북서쪽으로는 3만㎡의 금곡호가, 남쪽으로는 12만5,000㎡의 청옥호가 있다. 두 호수는 인근의 금곡계곡의 물줄기와 지반의 용출수가 폐광의 구덩이로 흘러들면서 형성됐다. 호수 주변으로 웅장한 계단식 절벽이 둘러져 있다. 동해시 관계자는 “석회질이 녹아든 호수는 은은한 에메랄드빛을 띤다”며 “호수를 메워야 하는 산림복원 대신 호수를 그대로 살려 관광지를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호수에서 즐길 수 있는 수상레저도 새로 도입됐다. 청옥호에서는 가족 단위 여행객을 겨냥한 4인승 원형보트 ‘알콩’, 초승달 모양 배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달콩’, 라벤더와 같은 보라색 오리배 ‘라벤덕’에 탑승할 수 있다. 보트들은 태양열로 작동해 편히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보다 활동적인 수상레저를 선호한다면 금곡호에서 페달카약을 체험할 수 있다.
주변의 체험 시설도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최고속도 시속 70㎞로 왕복 1,554m 거리를 활공하는 ‘스카이 글라이더’, 소나무 숲 사이를 가르는 ‘롤러코스터형 집라인’은 풍경을 감상하면서 스릴도 느낄 수 있다. 지상 체험 활동을 선호한다면 레일 위를 달리는 ‘알파인코스터’와 옛 채석장 관리 도로를 달리는 무동력 카트 ‘오프로드 루지’가 좋은 선택지다. 미끄럼틀 등 놀이 시설도 마련돼 있다. 절벽을 따라 놓인 길을 오르면 아찔한 높이의 ‘두미르 전망대’에서 라벤더와 호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황금박쥐 나오는 천연동굴
무릉별유천지에서 멀지 않은 동해 시내에 또 하나의 이색 볼거리가 있다. 전국의 천연동굴 중에서 유일하게 시내에 위치한 ‘천곡황금박쥐동굴’이다. 동해시청에서 불과 900m 떨어져 있고 동굴 바로 앞에 아파트 단지와 학교 시설이 있다. 전체 구간 1.5km 중 810m가 관람객에 개방된다. 1991년 아파트 공사 중 처음 발견돼 조사를 진행해 5년 뒤 일반에 공개됐다. 동굴 중에서 비교적 늦게 발견돼 보존 상태가 좋고 특이 지형이 밀집돼 있다. 한여름 실내 온도가 15도를 넘지 않아 피서 관광지로 인기가 많다.
개방 당시에는 ‘천곡천연동굴’로 불렸지만 2019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됐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황금박쥐’가 주기적으로 출몰하는 등 상시 서식처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동굴 내부는 석회동굴 특유의 종유석(고드름 모양으로 동굴 천정에 맺힌 석회질)과 석순(죽순처럼 동굴 바닥에서 올라오는 듯한 모양의 석회질)이 셀 수 없이 발달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천정용식구(굴 천정에 파인 도랑)도 볼 수 있다. 기다랗게 파인 동굴 초입의 용식구가 ‘용이 승천할 때의 모양’을 띠고 있어 ‘용굴’이라 따로 부른다.
본굴과 이어지는 가지굴로 ‘이승굴’과 ‘저승굴’이 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협소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느낌이다. 저승굴 안쪽에는 동굴 내부에서 발견된 동물 화석이 전시돼 있다.
동굴 밖 지상은 석회 지형을 이용한 자연학습체험공원이다. 석회암이 침식돼 지면이 꺼지면 ‘싱크홀’ 같은 지형인 ‘돌리네’가 형성된다. 석회굴인 천곡동굴의 형성으로 지면에는 돌리네가 형성됐는데, 이 지형을 중심으로 탐방로를 조성했다. 동굴에서 돌리네 탐방로로 가는 길에는 숲, 야생화 정원, 잔디 광장을 구경할 수 있다. 작은 산인 보림산을 오를 수 있는 등산로로 우회할 수도 있다. 많은 관광객이 동굴만 관람하고 쉽게 지나치는 곳이다.
이색 관광지가 알려지면서 지역 사회도 활기가 넘친다. 박영철 삼색삼화마을관리 협동조합 팀장은 “예전에는 여행객들이 무릉계곡만 들렀다 가고 길목에 있는 삼화동까지는 내려오지를 않았는데 (무릉별유천지가 들어서고 나서) 지역 곳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맘때면 지역에서 판매하는 ‘라벤더 아이스크림’ 등을 먹기 위해 70~80명씩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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