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일이다.
“How old are you? 몇 살이세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나는 학과를 대표하는 학과장이었고 그는 우리 학과의 교수 자리에 지원해서 일차 심사를 통과하고 캠퍼스를 방문한 후보였다. 나이를 물어보는 일은 미국 문화에서는 사석에서도 실례일 수 있는 질문이라서 하지 않는다. 공식 일정 중에는, 게다가 자신의 커리어에 중요한 결정을 할지도 모르는 상대 기관장에게는 더더구나 해서는 안 된다. 실수를 한 그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방금 제 나이를 물었나요?”
당신의 나이가 아니라 학교의 나이를 물었다고 둘러대면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네. 워낙 동안이세요. 저는 몇 살일 것 같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좋은 뜻으로 한 말이니 좋게 받아들여야할까… 미국 문화에서 아시아인의 나이는 가늠할 수 없다는 편견이 그대로 나오는 건가… 내가 과민한가… 내가 배배 꼬였나… 얼마나 우습게 보였길래 그런 말을 듣고 다닐까… 분노의 화살이 그에게 겨누어졌다가 내 자신에게 겨누어졌다가 했다. 튀어 나오는 단상 중에서 “그는 교수 임용 과정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므로 후보 순위를 내려야겠다”라는 입장을 선택했다. 내 위치에서 가장 생산적인 답을 선택한 셈이다.
선의에서 나왔겠지만 쎄한 느낌으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말은 30년 넘게 해온 미국 생활에서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복잡한 단상들을 정리하는 노동은 나의 몫이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한순간도 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례하다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수 있다.
5년 전 일이다. 어떤 학과에서 내부 갈등이 심해져서 학과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로 발전하여 나한테 왔다. 이 내부 갈등의 시발점은 선의의 멘트였다. 학과의 중견 교수가 새로 온 신임 교수의 머릿결을 보자 손을 대어 만지면서 감탄했다. “머릿결이 정말 멋지네요!”
신임 교수는 이 일을 즉시 학과장에게 가지고 가서 항의했다. 학과장은 이해하지 못했다. 칭찬의 뜻으로 한 말과 행동인데 너무 오바한다고 생각했다. 학과장은 자연스럽게 중견 교수의 입장에 섰다. 둘 다 백인 여성이었다. 신임 교수는 풍성한 머릿결을 가지고 있는 흑인 여성이었다. 흑인의 풍성한 머릿결에 대한 편견의 깊은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면 하지 말아야 했을 말과 행동이었다. 학과장이 공감하지 않자, 신임 교수는 이 일을 공론화시켰고, 학과는 내분을 겪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신의 머리를 매만진 중견 교수에게 분노한 신임 교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이런 멘트를 듣고 이불킥을 하면서 자책하던 옛날의 나와는 확실히 다르게 당당한 세대다. 불편한 멘트는 입 다물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공론화한다.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불쾌한 경험을 했는데 왜 불쾌한지 상대방에게 교육하는 노동까지 담당하라는 것은 부당하다는 태도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좋은 뜻으로 칭찬했는데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학과장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 것밖에 없었다. 나라도 불쾌했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겪어온 선의의 무례함에 대한 경험을 나누었다. “영어 잘하네요” “피부가 좋네요”와 같은 멘트는 칭찬의 뜻으로 했을지 모르지만 칭찬하는 마음 속에 “너같이 생기면 이방인이니까 영어를 잘할 리가 없지” “너같이 생기면 아시아 여자인데 아시아 여자들은 피부가 좋지”와 같이 상대를 틀에 넣고 생각하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면 칭찬이 아니다.
“아니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요?” 학과장은 탄식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무슨 말을 못 하겠네요. 도대체 사람 사는 맛이 없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멘트가 아무런 반감을 주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멘트를 듣고 불쾌한 사람들에게 이불킥을 하든 상대에게 분노하든 치러야 할 감정 노동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과장은 조금씩 공감하기 시작했다.
칭찬을 들었을 때 어딘지 쎄하고 걸리는 느낌이 든다면 선의의 무례함일 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정색하고 불쾌함을 표현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꿀꺽 삼키고 그 자리에서는 웃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것이다.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서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조금은 덜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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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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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반장 이후, 중국인민이 한국에 여행오면 1인당 5만원씩 지급해준다는 광고가 나왔다. 수많은 다국인들이 한국여행온다. 그런데 왜 중국인민들에게만 혜택을 주나? 선의의 무례함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