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부인’은 20세기 말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영화다. 극장용 영화로만 12편까지 제작됐고 해외 편인 ‘파리 애마’ ‘짚시 애마’, 유사품 ‘드라큐라 애마’ ‘애마와 변강쇠’ 등 총 20편이 넘게 극장에 걸렸다. 아무 관련 없는 홍콩 에로 영화에 ‘강시애마’라는 제목까지 붙은 걸 보면 ‘애마’라는 이름은 시대의 상징이자, 남성적 욕망의 대명사였던 셈이다.
■김기영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정인엽 감독은 미국 연수 중 봤던 에로 영화에서 충격을 받고 돌아와 ‘애마부인’(1982)을 만들었다고 했다.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 정책을 타고 제작됐으나, 애마(愛馬)라는 제목이 정부 심의에 걸려 애마(愛麻)로 바뀌고 시나리오도 36개 장면 수정 지시를 받는 등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대중은 ‘애마부인’에 열광했다. 영화관 매표소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관객이 몰려들었다. 서울에서만 31만 명을 동원하며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됐다.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애마부인’ 1편을 소재로 당시의 시대상을 풍자한다. 제작자는 여배우를 착취하고 권력자들에게 성상납도 불사하며 부를 축적한다. 촬영 현장에서 신인 여배우의 인권은 무시된다. 1990년 개봉된 4편 포스터에 ‘여성영화평등’이란 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쓰이는 등 여성주의 영화로 포장하려 애쓴 흔적이 있지만 영화 안과 밖에서 벌어진 착취와 차별 구조에 기생한 작품이란 점을 상기시킬 뿐이다. 드라마는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드라마 ‘애마’에서 여배우들은 연대해 충무로의 남성 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제작 시스템을 폭로한다. 실제로도 1980년대 충무로의 후진적 악습을 깬 건 새로운 영화를 꿈꾸던 젊은 영화인들이었다. 그중엔 이전 세대에서 소외되고 배제됐던 여성 영화인도 적지 않았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던 영화 중 상당수가 젊은 여성 제작자·프로듀서의 손을 거쳤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위기를 맞고 있는 현재 우리 콘텐츠 산업이 귀 기울여야 할 대상도, 업계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기성 세대가 아닌 젊은 인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고경석 /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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