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는 원래 2개의 주요 공항이 있었다. 도시 자체가 동서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자 이미 낡은 동서 베를린의 공항을 대체할 새 공항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고 그렇게 추진된 것이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공항이다.
1991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원래 2006년 착공돼 2011년 완공될 예정이었다. 많은 독일인들은 독일 공학의 정수를 쏟아부어 만들어질 이 공항은 완성되면 통일 독일의 상징이자 자랑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한 차례 공기를 늦춰 2012년 열기로 했으나 개장을 앞두고 발표된 감사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열리지 않는 자동문부터 가라앉는 천장, 위험하게 설계된 와이어링, 꺼지지 않는 전등과 켜지지 않는 전등 등 무려 12만개의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이를 고치는데 무려 9년 세월이 걸려 2020년에서야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공사비가 예정보다 몇배가 든 것은 물론이고 독일 행정과 관리 난맥상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 공항 건축 총책임자였던 마인하르트 폰 게르칸은 ‘블랙 박스 BER’이란 책에서 정치가들로부터 빨리 일을 끝내라는 압력을 받았고 경영진은 감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독일이 엉망인 것은 공항만이 아니다. 한 때 효율성과 정확성의 상징이던 독일 기차는 이제 세계인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최근 독일에 다녀온 여행객들은 이게 우리가 아는 독일 맞나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경우가 많다.
독일 기차는 평균 1/3이 연착하며 독일 철도 공사는 이로 인한 피해 배상금으로 2024년에만 1억9천700만 유로를 물어줬다. 독일 철도가 이렇게 늦는 이유는 지난 수십년간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아 일부 노선은 19세기 때 설비를 그대로 쓰고 있고 한꺼번에 여기저기 수리를 하느라 운행이 중단된 구간이 많은데다 철도 관리도 정부와 철도 공사 공동 책임이라 신속한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너지고 있는 것은 운송 체제만이 아니다. AI와 로보틱을 비롯한 미래 먹거리 첨단 분야에서 독일은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에도 한참 뒤지고 있다. 기술과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는데 과도한 사회 복지 비용으로 인해 정부 재정은 고갈되고 있다.
경제가 번창해야 세수가 늘고 그나마 그걸로 복지 국가를 지탱할 수 있을텐데 그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최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우리가 갖고 있는 복지 국가는 우리 경제가 생산하는 것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이런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이것이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프랑스의 프랑스와 바이루 총리는 오는 8일 신임 투표를 묻겠다고 밝혔는데 전문가들은 그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마크롱 정부는 마비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그를 대체할 극좌나 극우 세력도 경제를 살릴 아무런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크롱은 얼마 전 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금 수혜 연령을 62에서 64로 올리는 최소한의 개혁을 했다 쫓겨날 뻔 했다. 프랑스는 작년 GDP의 51%를 사회 복지 비용으로 썼는데 너도나도 이것도 부족하다며 더 늘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과도한 복지 예산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울 여력이 없는 셈이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과중한 세금과 복지 비용으로 첨단 기술과 기업을 육성할 여유가 없다.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하고 쓰기만 하는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갈리 없고 그 불만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극우파가 세력을 늘리고 있다. 영국의 나이젤 파라지, 프랑스의 마린 르펜, 독일의 AfD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동소이하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르펜의 후계자 조르당 바르델라가 지지율 36%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영국에서는 개혁 영국당의 파라지가 집권 노동당과 야당인 보수당을 제치고 1등이다. 독일에서는 한 때 친나치 극우 정당으로 열외로 취급받던 AfD가 집권 기민당과 지지율 동률을 기록했다.
자체적으로 경제를 살릴 능력을 상실한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IMF의 구제 금융 여력은 1조 달러 정도로 지금까지 최대 수혜국인 그리스도 370억 달러밖에 받지 못했다. 반면 영국의 국가 부채는 3조8천억 달러, 프랑스는 3조1천억 달러에 달한다. 애초에 구제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유럽이 우왕좌왕하며 미국에 매달리고 러시아가 이들을 우습게 아는 것도 말은 그럴싸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국방력을 강화할 여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500년간 세계를 지배하던 유럽이 서서히 침몰해 가는 모습이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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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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