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왕’으로 불린 프랑스 루이 14세가 1685년 10월 18일 ‘퐁텐블로 칙령’을 내렸다. 가톨릭만 국교로 인정하고 다른 종교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후 칼뱅주의 개신교를 믿었던 위그노들은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차별과 탄압에 못 이겨 해외로 떠나야 했다. 1598년 앙리 4세가 국민 통합을 위해 위그노에 대한 종교의 자유를 승인한 ‘낭트 칙령’도 “짐이 곧 국가”라는 서슬 퍼런 전제군주의 말 한마디에 설 자리를 잃었다. 5년 새 최소 20만 명이 프랑스를 빠져나갔다. 성경 출애굽기를 연상시키는 ‘위그노 엑소더스’였다.
명암은 극명하게 갈렸다. 당시 위그노들은 유럽 최고의 상공업 지식과 기술, 경험을 갖춘 고급 인력이었다. 철강과 화학·정밀기계·염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지식인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프랑스 경제도 기울기 시작했다. 시대 흐름을 간파하고 빈틈을 노린 것은 독일과 영국·네덜란드 같은 유럽 경쟁국이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제는 “종교의 자유를 잃은 자들이여, 독일로 오라”고 손짓하며 위그노 유치 법안을 공표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제약 회사 바이엘 창업주는 이때 이주한 위그노 후손들이다. 영국 찰스 2세도 위그노 특별이민법을 제정해 첨단 인재를 끌어들였다. 위그노들이 전수한 증기기관 기술과 면방직 노하우는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됐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건설의 마중물이 됐다.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문직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H-1B 비자 수수료를 1인당 10만 달러(약 1억 4000만 원)로 100배 올렸다. 자국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해외 인재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으름장에 다름 아니다. 중국과 영국·호주 등 해외 국가들은 이 틈을 파고들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전용 비자를 만들고 비자 수수료를 폐지하고 있다. 정작 해외 인재 확보가 시급한 것은 저출생·고령화 덫에 빠진 한국이다. 비자 요건을 완화하고 세제 혜택을 늘려 ‘브레인 투 코리아’ 로드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서정명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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