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울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며 몰래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을 보고 들켰을 때 꾸중을 들었던 기억은, ‘남자의 눈물은 숨겨야 한다'는 무언의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나이가 들면 남성 호르몬 변화로 감성적이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예전에는 혼자 흐느끼는 것이 미덕이자 남자다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남자가 우는 모습은 약하고 남자답지 못하며 추하게 보인다는 시선 때문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모든 눈물이 추한 것은 아니다. 부모님의 죽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고마움과 사랑의 아름다운 표현으로 승화된다. 가까운 이가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터져 나오는 슬픔의 눈물 또한 그들의 삶을 기리는 숭고한 울음이다.
반면, 분노를 이기지 못해 흘리는 울음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가장 추한 눈물이다. 이러한 울음은 감정을 정화하고 자신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자기 위안의 의미가 강하다.
나는 잘 우는 편이다. 억지로 참으려 해도 감격스러운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때로는 조롱 섞인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다. 감격의 종류는 다양하다. 타인의 선행에 감동받아 울기도 하고, 스스로가 잘한 일에 벅차올라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자신이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며, 그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격의 눈물은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하다고 믿는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았을 때 흘리는 애국자의 눈물이야말로 감격의 정점에 달하는, 가장 고귀한 울음일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다운 순간을 목격했을 때 터져 나오는 눈물은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흘리는 눈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간적인 감정의 발로인 것이다.
가왕 조용필이 투병 중인 소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병실에 찾아가 노래를 불러주었다는 이야기에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또한, 앞을 보지 못하는 코미디언이 기증자를 만나 “가진 것이 눈밖에 없는 분에게 받을 자격이 없다"고 거절한 인격적인 모습에 깊이 감동하여 눈물을 쏟기도 했다. 세상에는 이렇듯 많은 인간적인 분들이 있다. 그리고 그분들이 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내가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고 해서 나의 품격이 떨어질까? 오히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남에게 진정한 도움의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오랜 고생 끝에 삶을 마친 이들에게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누구나 가는 길이고, 어쩌면 가장 좋은 곳으로 떠났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늙으신 부모님이 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을 때, 겉으로는 슬퍼하며 남들 앞에서 울음을 보일 수 있지만 속으로는 ‘이제는 편히 가셨다'고 생각하며 보내드렸다. 차라리 떠나는 이가 평안하기를 바라며 미소로 보내주는 것이 진정한 예의가 아닐까? 살아있는 우리끼리 서로 돕고, 감격스러운 순간에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세상을 맑고 선한 마음으로 채워나가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인간적이고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남자의 눈물은 강인함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공감과 감동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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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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