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한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대부,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4일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으로 꼽힌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는 국방장관으로 걸프전 ‘사막의 폭풍’ 작전을 지휘했고 아들 부시 정부에서는 부통령으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설계자가 됐다. 미국의 가치를 힘으로 전파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네오콘의 구심 역할을 했던 그는 훗날 이라크 전쟁이 ‘딕의 오판’이라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끝내 “옳은 일을 했다”는 확신을 거두지 않았다.
■체니 전 부통령이 이끌던 네오콘은 본래 민주당 내 자유주의 매파에서 출발했다. ‘68혁명’ 이후 민주당이 좌경화되자 공화당으로 옮겨가며 정치 세력화했다. 그들의 정체성은 ‘힘에 의한 외교’로 요약된다. 전쟁을 불사하는 군사 개입, 강경한 외교, 경제제재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와는 결이 달랐다. 일부에서는 체니 전 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 트럼프의 권력 기반을 닦았다는 분석도 있지만 말년의 두 사람은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그래서일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애도 성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금 미국 공화당 내에서 네오콘은 ‘마가(MAGA)’ 세력에 밀려 존재감을 잃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 5월 극우 선동가 로라 루머가 ‘진짜 트럼프 감별사’를 자처하며 체니의 대테러 고문 출신인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내친 것은 네오콘 숙청의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네오콘이든 팔레오콘(고보수주의자)이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안정된 한미 관계다. ‘핵 포기 정상외교’라는 체니의 대북 원칙이 핵 보유 인정으로 후퇴할 가능성, 동맹 현대화와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 안보 문제뿐 아니라 무역·경제 분야에서도 변화의 파고가 거세질 수 있다. 트럼프의 말이라는 나무보다 미국 정치 지형이라는 숲을 봐야 한다.
<김현수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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