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놀람(驚)’과 ‘두려움(恐)’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에너지를 지니며, 몸의 기운을 가장 깊은 곳에서 흔드는 감정이다. 이 두 감정은 단순히 마음의 반응에 그치지 않고, 심장(心)과 신장(腎)의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놀람(驚)- 정신을 흩어버리는 충격의 힘
한의학에서는 ‘경즉기란(驚則氣亂)’이라 하여, 놀라면 기운이 흩어진다고 설명한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 예상치 못한 사고, 충격적인 소식처럼 외부의 강한 자극이 몸에 들어오면, 우리의 방어 체계가 대응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그 순간 기운은 제 방향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몸과 마음은 마치 폭풍 속의 나뭇잎처럼 흔들리게 된다.
심장은 한의학에서 ‘군주지관(君主之官)’이라 불리며, 정신(神)이 머무는 중심이다. 놀람이 심장을 강타하면 정신은 그 자리를 잃고 밖으로 튀어나간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은 사람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을 감아도 그 순간이 떠오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밤이 되어도 흩어진 정신이 돌아오지 못해 불면이 이어지고, 작은 자극에도 심장이 쿵쿵 뛰며 다시 놀란다.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한의학에서 말하는 ‘심신불녕(心神不寧)’이 된다. 이는 현대의학으로 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유사하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폭력, 충격적인 경험 이후, 사소한 자극에도 몸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감정이 불안정해지며,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의학적으로는 흩어진 기운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생기는 현상이다.
두려움(恐) -생명의 뿌리를 약하게 하는 감정
놀람이 외부에서 오는 순간적인 자극이라면, 두려움은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지속적인 감정이다. 시험을 앞둔 불안, 실패에 대한 공포, 관계에서 오는 위축감, 혹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한의학에서는 “공즉기하(恐則氣下)”라 하여, 두려움은 기운을 아래로 꺼뜨린다고 보았다.
우리의 기운은 본래 하늘과 땅처럼 위아래로 순환해야 한다. 그러나 두려움이 지속되면 기운이 아래로만 가라앉고, 다시 위로 오르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몸의 중심축이 무너지고, 자신감과 의욕이 떨어지며, 마음이 쉽게 위축된다. 이때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장부가 바로 신장(腎)이다.
신장은 우리 몸의 생명력을 저장하는 ‘정기(精氣)’의 보고(寶庫)이며, 오장육부의 근본이 되는 기관이다. 또한 몸의 수분 대사와 배설 기능을 조절하고, 생식력과 뼈의 건강, 성장 발달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두려움이 신장을 상하게 하면, 허리와 무릎이 약해지고, 만성 피로와 무기력증이 나타나며, 밤에 자주 소변을 보는 증상(야간뇨)이나 골다공증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심과 신의 조화가 무너질 때 생기는 악순환
놀람은 심장을 약하게 하고, 두려움은 신장을 약하게 한다. 두 감정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악순환을 일으킨다. 심장이 약해지면 작은 일에도 쉽게 두려움을 느끼고, 두려움이 깊어지면 신장의 물(水) 기운이 고갈되어 심장의 불(火)을 제어하지 못한다. 결국 불과 물의 균형이 깨지면서 마음은 더 불안해지고, 불면과 초조, 맥박의 불규칙함 같은 증상이 생긴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심신불교(心腎不交)’라고 부른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감정은 억누르거나 없애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나의 기운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지금 놀람으로 인해 기운을 ‘흩어버리고’ 있는지, 아니면 두려움으로 인해 기운을 ‘꺼뜨리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의 방향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몸의 기운을 되돌리는 첫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양생(養生)은 거창한 수련이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의 상태를 자각하고 그 균형을 되찾는 일에서 시작된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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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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