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케 하이덴라히리 지음/유영미 옮김
이제 내 또래의 친구들은 모두 환갑 진갑이 지나 본격적으로 노년의 시기(혹은 늦은 중년의)를 맞았다. 아무도 이 시기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채 그저 나이를 먹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하는 심정인 것 같다. 누구는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을 돌보아 주고 있고 어쩌다 통화를 하면 “얘, 생각보다 힘들어, 정말 내 핏줄이니까 봐준다”라고 심경을 토로한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그런 나이에 우리가 접어든 것이다. 본격적으로 몸 여기저기에서 고장 신호를 보내오는 그런 때가.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나 자신으로 늙어 간다는 것이 어떤 일인 지,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보며 앞으로의 시간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 지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그 음성이 무척 강렬하고 유쾌하다. 나이든 것에 대한 신세 타령, 눈물 콧물 훌쩍이는 처량함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까칠함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고 호기롭게 세상에 말한다. 심지어 “연애도 좀 작작 할 걸, 담배도 좀 덜 피울 걸” 반성하지만 그렇다고 그 때의 일들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간직한다. 그러면서 늙어 온 자기 자신에 대해 ‘굉장한 인생’이었다고 자부한다. 결코 연민의 파도에 휩싸이지 않는 것, 이런 작가의 태도는 많은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이 듦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읽는 동안 많은 곳의 페이지를 접어 놓고 밑줄을 치며 공감했다.
“나이 들었다는 건 내게 어떤 의미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부인하지 않겠다는 것, 내 나이보다 젊어 보이려고 애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나이 들었다고 해서 결코 삶이 전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름에 대한 작가의 생각 또한 솔직하고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나는 친구들과 긴긴밤을 보내면서 이런 주름을 얻었다.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면서, 건강에 무신경하게 멋진 삶을 살면서 이런 주름을 얻었다. 울어서 생긴 주름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울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슬퍼서, 사랑해서, 행복해서 울었던 것을.
나이 든다는 것은 불편함이 더 많아지는 시기이다. 몸의 기력은 떨어지고 그런 몸을 돌보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의 종류는 더 많아지고, 병원도 더 자주 가야하고, 깜빡하는 일이 많아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하는 등, 몸도 몸이지만자주 허전해지는 마음은 또 어떤가. 이런 때일 수록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마음, 내면의 뜰을 더 가꾸고 싶어진다.
노년은 우리가 한번도 살아 보지 않은 시기, 인생학교에서 마지막 과정이겠고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스승이 또한 필요하다. 과장하지 않고 위축되지 않으며 유쾌하게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이 책을 만난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작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맞이한 이 노년의 시기를 잘 보내라고, 나를 더 존중하고 감사하면서 한 번 더 힘을 내 보라고 하는 지혜롭고 자애로운 음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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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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