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셈튼이라는 분이 있었다. 이 사람은 다이어트에 대하여 일가견이 있는 분이어서 TV에 고정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였고, 장수하는 방법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낸 사람이다. 건강을 잘 관리해서 장수하는 인생이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은 40세에 죽었다. 건강은 관리하지만 생명은 관리할 수 없다는 분명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 인물이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하건 말건 대략 수명은 공평하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약 10년은 더 사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인생에 아주 심각한 병을 앓다가 회복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수명이 늘어난 대신 질병도 그만치 자주 방문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겪은 경험담이 인구에 회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보니 어지간한 사건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병원에 가보면 안다. 퀸즈 곳곳에 즐비한 병원들을 보며 저렇게 구석진 곳에 환자가 있을까 싶지만 글자그대로 어디든 만원이다. 병원만이 아니다. 약국에 가면 약 타러 온 사람이 늘 대기하고 있다. 한번은 후러싱에서 리틀넥까지 지나가며 약방을 세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참으로 몸이고 정신이고 안 아픈 사람이 없다.
문제는 아팠다가 치료받은 후에 달라지는 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꼭 죽을병이 아니더라도 중한 질병을 이기고 회복했다면 내가 왜 그런 일을 겪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있으면 좋겠다.
두통이니 소화니 이런 일상의 질환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할만치 중한 병에 걸렸다가 치유 받은 경우에는 그저 일회성으로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몇 해 전, 앰뷸런스에 실려 갔었고 입원한 후에는 긴 시간을 거기 있었는데 그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그 일을 되 뇌이게 되고 그 의미를 반추하게 되었다.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때가 순서별로 생생하게 떠오르고 그 하나하나의 동선(動線)이 주는 깊은 교훈을 갖는다. 하여 인간에게 질병이란 없는 게 좋지만 있어도 있어야할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인 강은교님은 자기가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를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 남들이 잘 걸리지 않는 병을 앓아 수술도 세 번씩이나 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몸은 늘 약했고, 누워있는 시간이 일어나 있는 시간보다 많았다. 게다가 애 둘을 낳았는데, 그 아이들을 낳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고통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절망의 날, 그 괴롭고 아픈 날들 속에서 나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고, 그리고 죽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렇게 죽어야 하는 그가 죄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엄청난 일은, 고통으로 아파하는 나를 향해 이유 없이 죽어야 했던 예수가 손을 뻗쳐 위로하시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비상식적인 고백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질병이나 고통은 뜻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그 고통을 통해서 주는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받고 알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지난밤에, 몇 년 전 그때의 질병이 새삼 떠오르며 그때 입원실 병상에 누워있는 초라한 내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은 “그 일을 잊지 마라”는 깊고도 신비로운 여운을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꾼 꿈은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고 족히 한 시간 쯤을 앉아 있다가 다시 잠을 청했으나 그리 쉽게 잠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가을이 막 가고 있다. 어느새 봄여름을 다 보내고 한해의 막바지로 가고 있다. 왜 이리 세월은 빠른가. 누구는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고 위로하지만 그 말과 어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늙어갈수록 삶에 진지해지는 게 오히려 좋다. 고독도 좋고 질병도 좋다. 다 가까이 다가올 이유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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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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