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북가주 샌타 로자에서 일어난 산불은 그 때까지 가주 사상 최악이었다. 22명이 사망했으며 8개 카운티 3만7천 에이커가 불타고 샌타 로자시는 원자탄을 맞은듯 폐허로 변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불과 1년 뒤 깨졌다. 역시 북가주 뷰트 카운티에서 발생한 산불로 85명이 사망하고 15만 에이커가 소실됐다.
그리고 2년 뒤 가주 최초의 주립공원인 빅베이슨 레드우드 주립공원의 97%가 잿더미로 변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 최대 레드우드 군락지이던 이곳에서 천년 넘게 살던 나무 수만그루가 사라졌다. 2025년에는 LA 사상 최악, 가주에서는 3번째로 큰 퍼시픽 팰리세이즈 산불이 터져 12명이 죽고 가옥 6천800여채와 2만3천 에이커가 불탔다. 가주 최악의 산불이 모두 지난 10년 사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전문가들은 잘못된 산림 정책이 대형 산불의 최대 원인으로 보고 있다. 조그마한 산불도 모두 끄고 본다는 것이 최근까지 산림 당국의 기본 입장이었는데 이것이 대형 산불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엘리자벳 웨일은 2020년 프로퍼블리카에 발표한 글에서 선사 시대 가주에서는 매년 400만에서 1천100만 에이커 규모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산림청이 개입하면서 1982년에서 19998년 사이는 연 3만 에이커, 1999년부터 2017년까지는 1만3천 에이커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러다 보니 낙엽과 잡목이 쌓이고 쌓여 한번 터지면 크게 터지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가주 숲이 대형 산불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2천만 에이커가 더 타야 한다.
작은 산불은 식물을 재로 만들어 비료 역할을 하게 하며 경쟁을 줄여 남은 나무들을 튼튼하게 만들고 새싹이 자라는 것을 쉽게 하며 해충의 수도 줄여준다. 일부 소나무는 산불이 나야 솔방울이 열려 씨를 퍼뜨릴 수 있다.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오래 전부터 예방적 산불을 실천해왔다.
비슷한 원리가 인간의 신체에도 적용된다. 최근 한 한인은 배가 아파 병원에 갔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암인 것 같으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검사 결과 위암 말기로 전신에 퍼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이 한인은 칠십 평생 아파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병원에 간 적도, 검사를 받은 적도 없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 한인은 진단 한 달만에 사망했다.
약간의 질병이 몸에 좋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질병은 잠자던 백혈구(nave T cell)를 활성화시켜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휴식을 취해 에너지를 아끼게 하며 병원에 자주 가 정기 검진을 받게 한다. 천하장사보다 골골하는 할머니가 더 오래 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경기도 마찬가지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작은 불황이 오히려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하며 이를 인위적으로 막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 1924년과 1927년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는 불황을 막기 위해 금리를 낮췄는데 그 결과 20년대는 호황을 구가했지만 1929년 주가 폭락과 함께 30년대 내내 사상 최악의 대공황을 경험해야 했다.
그 후 80년의 세월이 지나 2000년 하이텍 버블이 터지면서 불황이 오려 하자 FRB는 다시 1%대로 금리를 내려 막으려 했다. 그 결과 불황은 가볍게 지나갔으나 부동산 버블이 부풀면서 2008년 세계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대불황을 겪었다.
다시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미국은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한 짧은 불황을 제외하고는 불황다운 불황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와 함께 주식 시장도 폭락 장세 없이 꾸준한 상승을 기록했다. 2008년 반토막이 난 주가가 최고치를 갱신하는데 5년이 걸렸지만 지난 4월 도널드의 관세 폭탄으로 폭락한 주가가 회복되는 데는 4개월 남짓 걸렸다.
월스트릿 저널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26번의 베어 마켓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불황이 온 경우는 회복하는데 81개월, 불황이 오지 않은 경우는 21개월이 걸렸다. 반면 지난 16년간은 회복 기간이 8개월에 불과했다. 이는 2008년 불황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약체 기업은 정리되고 튼튼한 것만 살아남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사람들은 불황은 구시대의 산물이고 주식은 항상 오른다는 위험에 대한 무신경에 빠지게 된다.
불황은 고통스럽지만 불량 기업과 불량 채무를 정리해 경제를 건강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불황은 많은 사람이 예상하지 않을 때 조용히 온다. 장기간 불황과 베어 마켓의 부재는 다음 번 찾아올 곰의 크기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