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점점 넓어져 간다. 온 세상을 짙푸르게 군림하던 나무잎들의 기세가 거짓말처럼 꺾이다가 붉고 노란 옷으로 아름답게 황혼을 불태우더니 이젠 세월의 무늬가 얼룩진 낡고 마르고 바랜 모습으로 다 떨어졌다. 석양은 변함없이 저 멀리 산등성이에서 흰 구름조각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깨끗이 비워낸 가지에 걸쳐있다가 가지 끝에 남겨진 검붉은 잎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저물어 가는 햇살의 그림자가 우리의 노후처럼 서늘해 보인다.
다음 자손을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터득하고 있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심오한 원리를 배운다.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가 머리를 스친다. 오늘 아침에는 떨어진 낙엽을 긁었다. 떨어진 건 잎들만이 아니었다.
부서지고 상한 가지들, 병들고 벌레먹은 커단 나뭇가지들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모든게 하나님의 은혜였다. 모진 바람 다 지나가고 고요히 흐르는 호수의 잠잠함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낀다. 감나무의 홍시처럼 내가 내 안에서 서서히 익어가고 있음을 뒤늦게 배우고 있다.
사실 살면서 움켜쥐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사는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은데. 물질적인 것 뿐아니라 권력의 끄나풀을 잡으려하고 허황된 감투에 눈이 먼 사람도 있다.
탐욕은 버리고 마음을 곧게하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자연을 접하며 살고 싶은 건 나이가 들어서 일까. 젊어서는 세상을 품으려고 애쓰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마음을 비우게 된다.
욕망을 버리면 내면의 소리가 들리고 자신의 소리가 그 속을 메운다. 비우면 채워지는 자연의 섭리에서 인생를 배운다. 겸허하지만 진실되게, 고독하지만 맑고 고요하게 사랑을 품은 늦가을의 인생을 배우고 있다.
마음을 비우지 못해 일찍 생을 마감한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을 기억한다. 너무 아까운 38세 나이에 결투로 생을 마감한 작가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라/ 슬픈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찾아오리니/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살고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이고 모든 것은 지나가네/ 지나간 모든 것은 소중하게 되리니” 그러나 이 멋진 시를 써 놓고 정작 그는 노여움을 못 견디고 결투에 응하다 목숨을 잃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희곡, 소설등 다양한 장르에서 빛을 발휘했고 매혹적이고 러시아 다운 작가였다. 낭만적이고 열정적이었던 그가 마음을 비우고 참었더라면 위대한 작품을 많이 남기고 러시아문학이 한층 더 활기롭고 풍성해졌을텐데.
“소유는 베풀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즐기기 위해 갖는게 아니다.” 즉 소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와 닿는다. 비록 삶이 외롭고 고달파도 덕을 쌓으며 모든 짐을 내려놓고 정리하며 홀가분해야 남은 삶이 평안해지지 않을까. 타인을 존중하고 마음을 비우면서 검소하지만 추하지 않게, 겸손하지만 천박하지 않게 확고한 자존감을 갖고 살고 싶다. 여행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책을 읽으며 남은 인생을 사랑하며 살면 노후의 삶이 좀더 풍요로워지리라 생각한다. 사랑의 끝은 인생의 종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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