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처음 이민왔을 때 집에 Sony TV 가 있으면 부자였다. 당시 칼라 TV 가격이 19인치 기준 4백 달러했는데 Sony만 5백 달러가 넘었다. RCA를 비롯한 미제 TV 와 다른 일제 TV들이 시중에 나와 있었지만 Sony TV만이 압도적인 선명도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백불, 2백불 차이였지만 당시Sony TV를 사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히 금액 차이때문만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그 2백불 차이가 주는 정신적인 여유때문이었다. 최저 급여가 당시 시간당 3달러였던 시대였으니 렌트비나 주거비 빼고 쓸 수 있는 돈의 여유가 그만큼 궁핍했던 시절이었다. 이민 온 한국 사람들은 자기 집을 장만한 뒤 캐들락이나 벤츠 차를 타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생각이 단순하니 생활도 단순했고, 주머니에 단돈 40달러만 있으면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맥도널드의 빅맥이 음료수 포함 2달러 50센트였고 영화 관람료 4달러, 동시 상영관은 2달러였다. 자동차 개스 가격이 갤론 당 99센트에서 1달러 29센트를 오르락 내리락 하던 시절이었다. 세이프 웨이에서 20달러가지고 장을 보면 한바구니 가득했다.
그러한 시절에도 한가지 비싼게 있었으니 바로 레코드 음반 가격이었다. 타워 레코드 등에서 판매하던 LP 가격은 CBS, DECA, RCA 등 메이저 레벨인 경우 8달러 99센트였는데 Tax까지 붙으면 10달러에 육박했다. 당시 주머니에 돈이 좀 생기면 100달러를 들고 레코드 사냥에 나서곤 했는데 그 100달러를 쓰는데 무려 4시간 이상 걸린 적도 많았다. 듣고 싶은 음악이 하도 많아서 이것 살까 저것 살까? 들었다 놨다… 혹시 좀 더 싼… 같은 가격에 레코드 2장짜리는 없나?... 그렇게 시간 투자하고 돈을 투자한 레코드가 귀할 수 밖에… 집에 돌아오면 듣고 또 듣곤 했다.
요즘은 당시 Sony TV 가격인 5백 달러만 가지면 60인치가 넘는 스마트 TV를 살수 있다. 화질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시 Sony TV는 상대도 할 수 없을만큼 좋아졌다.
대형 TV로 뻥뚫린 (영화) 화면 속으로 말달리다 보면 정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듯 행복감이 들지만 왠지 화면의 크기만큼 비례적으로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나도 Sony TV를 살 수 있을 것 같은, 언젠가는100달러가 아니라 1,000달러 이상을 들고 마음 껏 레코드판을 쇼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로망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요즘은 음악도 AI , 아이팟 같은 작은 컴퓨터 기기안에 수천곡씩 담아서 좋은 성능의 해드폰으로 마음 껏 들을 수 있다. 드라곤 플라이같은 음향 향상 기기를 이용하면 컴퓨터나 아이팟 속의 음악들을 고급 전축에 연결하여 빵빵거리는 원음의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얼마전 어떤 아는 분이 집에 최고급 스피커와 엠프 그리고 모아놓은 1천 5백장이나 되는 LP 판을 저렴한 가격에 가져가라고 했는데도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싯가 수만달러의 음향기기가 공중분해되는 순간인데도 하등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 이상 필요없는 구시대의 산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AI가 많은 부문에서 사람일을 대신하고 있다. 애써서 모아왔던 정보 또는 애써서 구입했던 LP 또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마저도 얼마가지 않아서 AI가 대신해 줄 수도 있는 시대가 멀지 않은 것같다. 로봇 택시, 챗GPT…, AI가 골라주는 음악… 우리가 사는 공간에 (나보다 똑똑한) 또하나의 내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행복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나침판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Sony TV 한 대면 행복했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리운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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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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