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여행 중 북미 대륙의 최고봉 맥킨리 산(투어 당시 이름은 데날리) 빙하 투어를 하기 위해 도시 외곽에 있는 탈카티나 경 비행장에 도착했다.
그곳은 맥킨리 산 등정을 하기 위해 찾아온 등반가들이 첫 발을 내딛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비행장 옆 나무 숲에는 소박하고 수수하게 조성된 탈카티나 공원묘지가 있는데 그곳은 맥킨리 산 등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시신을 수습했거나 시신을 찾지 못해 지금까지 실종으로 처리된 세계 산악인들을 기리는 묘지 형태의 상징적 추모 공원이다.
들풀에 둘러싸여 꽂혀있는 태극기가 보이기에 가보니 1994년 등반 중 산악 사고사로 희생된 25살 이상명, 26살 김기원 두 한국 산악인의 추모 묘소였다. 또한 그곳에는 한국 등반사에 큰 업적을 남기신 고 고상돈 등반가의 기념비도 있었다.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어 당시 가난했던 나라 대한민국에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셨던 분.
2년 후인 1979년 맥킨리 최고봉 6,194미터 등정에 성공했으나 안타깝게도 하산 도중 추락사를 당해 이일교 대원과 함께 인생 여정의 마지막 발걸음을 산에서 멈추게 된다.
고상돈 대장 30세, 이일교 대원 24세였다. 기념비에는 이런 추모시가 적혀있다.
‘젊은 넋이여! 겨레의 기상 싣고 흰 상상봉에 늘 머물거라' 또 그 옆에는 1987년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신 고 신경섭 등반가의 추모비도 있다. 10인승 경비행기에 올랐다. 탑승객을 태운 비행기는 눈 덮인 맥킨리 산의 험준하고 장엄한 수천 미터급 고봉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광활한 대 자연의 웅장함을 보여주었다.
협곡마다 얼음강이 흐르고 하얀 빙하들 위에는 진 녹색 호수들이 에메랄드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고상돈, 이일교 두 분이 사망한 지점인 Mount Hunter를 지나 만년설 협곡 사이를 돌고 돌아 드디어 비행기는 Ruth 빙하 위에 착륙하였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마중 나와 있던 산 바람이 달려와 격한 포옹을 해준다. 그곳은 그 어떤 소음도 올라올 수 없는 곳으로 태초의 고요함만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 고요 안에 걱정거리를 벗어던지고 몸과 마음을 담갔다. 만년설처럼 하얀 평안함이 삶의 고단함에 찌들어 있는 잡생각 찌꺼기들까지 깨끗이 닦아주는 것 같았다.
칼끝처럼 뾰족한 기암절벽들이 어깨를 맞대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곳, 이 산 어딘가에서 생의 마지막 호흡이 멈췄을 산악인들을 떠올려봤다. 실제로 설산 고봉들을 보니 깎아지른 암벽 빙하에 도전하는 클라이머들이 얼마나 위대한 분들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때로는 온갖 포악한 성질을 숨기고 있다가 어느 순간 달려들어 구만리 같은 앞날을 영원히 꺾어버리거나 몸을 망가지게도 하는 고산 등반, 그럼에도 산에 오르기 위해 목숨을 담보물로 내놓고 악천후와 싸워가며 고군분투 하는 산악인들의 강인함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숭고함마저 든다. 맥킨리 산은 멀리서 보면 한없이 위엄 있고 관대해 보이지만 그 멋진 위용 속에 냉혹하고 잔인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 비정한 산이기도 하다.
바다 건너 머나먼 나라 알래스카까지 날아와 완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투 끝에 오른 정상에서 그 짐을 내려놨으나 홀가분함도 잠시 다시 땅을 밟지 못하고 Talkeetna Cemetery 공원묘지에 살아있던 흔적을 이름 석자로 남긴 등반가들. 고상돈 원정대장 외에는 처음 알게 된 이름들이지만 그분들이 영면에 든 나이를 보았기 때문일까? 차가운 아침 사분사분 내리는 겨울비에 시린 마음이 소리없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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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실 시인 /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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