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조’ 팝업스토어 장사진… 2시간 만에 완판
▶ 특허권자 부재… 너도나도 두쫀쿠 제조·판매
▶ 자영업자들 ‘활기’… 원재료값 폭등 부작용도
2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백화점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개장 시간인 이때부터 곧바로 수십 명이 한 임시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 또는 설렘이 가득했다. 요즘 귀하디 귀하다는 디저트 '두쫀쿠'를 맛보기 위해 백화점 문이 열기도 전에 몰려든 소비자들이었다. 해당 매장은 경기 김포시에 본점을 둔 수제 과자 전문점 '몬트쿠키'의 팝업스토어다. 지난해 4월 찹쌀떡처럼 동그란 모양의 두쫀쿠를 처음 만든 '원조'로 알려져 있는 몬트쿠키는 19일부터 더현대 서울에 팝업스토어를 한정 운영하고 있다. 더현대 서울은 두쫀쿠 구매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 백화점 외부 지하 통로에 별도의 대기 공간도 마련했다. 두쫀쿠 열풍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최승훈씨 역시 백화점 개장 1시간 전인 오전 9시 30분쯤부터 대기 공간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마침내 두쫀쿠를 손에 드는 순간, 최씨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김밥 한 알 정도 크기인 두쫀쿠의 가격은 4개 묶음에 무려 2만2,900원. 개당 5,725원 꼴이다. 두쫀쿠 4개를 하나로 합친 '두바이왕쫀득쿠키'는 1만9,900원에 달한다. 둘 다 저렴하다고 볼 수는 없는, 오히려 '비싸다'는 느낌을 주지만 전국적인 두쫀쿠 품귀 현상 탓인지 '1인당 4개'(일반 두쫀쿠 기준)로 구매 수량 제한까지 뒀다. 그럼에도 이날 준비된 두쫀쿠는 약 2시간 만에 동이 났다. 이곳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이윤민 몬트쿠키 대표는 "두쫀쿠 열풍 덕에 (오프라인) 매장 2곳과 팝업스토어, 온라인 주문을 통해 하루 2만~3만여 개가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작자'가 있다고 해서 두쫀쿠가 몬트쿠키의 전유물인 건 아니다. 디저트와는 무관한 업종의 자영업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두쫀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냉면집이나 국밥집, 심지어 이불 가게마저 미끼용 상품으로 두쫀쿠를 판매 중이며, 헌혈의집 또한 헌혈자들에게 제공할 답례품으로 두쫀쿠를 내걸었다. 두쫀쿠 판매처의 위치와 잔여 수량을 지도 위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두쫀쿠맵' 서비스도 등장했다. 두쫀쿠 유행은 '광풍'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두쫀쿠 따라 만들기, '레시피 표절' 아닐까두쫀쿠는 어떻게 대한민국 디저트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할 수 있었을까. 온라인에선 '자영업이라는 깨진 항아리에서 새는 물을 두쫀쿠가 막고 있다'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도 퍼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정말로 누구든 아무 제한 없이 두쫀쿠를 자유롭게 만들고 팔아서 수익을 올려도 되는 것일까.
두쫀쿠는 초콜릿과 마시멜로를 섞어 만든 얇은 피로, 중동식 소면 카다이프를 넣은 피스타치오 반죽을 감싸서 만든 쿠키다. 2024년 여름 한국 디저트 시장을 강타한 '두바이 초콜릿'을 한국식으로 응용한 간식이라고 할 수 있다. 레시피(조리법)를 개발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원작자 허락 없이 누구나 따라 만들어 팔 수 있다. 현재로선 두쫀쿠의 레시피와 디자인을 '권리'로 보호해 주는 방어막, 즉 '지식재산권'이 특정인에게 귀속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식품도 엄밀히 말하면 특허권, 디자인권, 상표권, 영업 비밀 등 지식재산권의 대상 범주에 속한다. 이를테면 식품 외형은 디자인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식품의 새로운 제조 방법이나 기술적 아이디어도 발명품으로 인정돼 특허 등록이 가능하다. 자신이 개발한 음식 상품을 타인의 제품과 다르게 식별할 수 있도록 상표권을 등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만 식품 조리법인 레시피를 '특허'로 보호받기 위해선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간략히 말하자면 △신규성(이미 알려진 기술이 아닌 것) △진보성(선행 기술로는 도출해 내기 힘들 정도의 차별성) △산업적 이용 가능성 등을 갖춰야 한다. 일단 특허 등록에 성공하면 창작자는 출원일로부 20년간 해당 레시피를 독점적으로 이용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 "레시피 특허, '차별성' 과학적 입증해야"그러나 아예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는 '새 레시피'를 내놓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요리는 인류 문명 시작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하혜경 지식재산처(옛 특허청) 식품생물자원심사과 사무관은 "레시피가 특허로 등록되려면 식품 가공 기술 등을 이용해 기존 레시피와는 다른 효과를 내야 하고, 그 효과도 단순히 '맛있다'는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별화'의 증명 기준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몬트쿠키의 이 대표도 초창기엔 두쫀쿠 특허 출원을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접었다. 애초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특산품인 '두바이 초콜릿'의 변형인 데다, 이름에도 누구나 사용 가능한 지명(두바이)과 식감 표현(쫀득)이 들어가 있다는 점 등이 걸림돌로 느껴졌다. 이 대표는 "디저트의 특허 출원이라는 게 워낙 힘든 것으로 안다"며 "우리 브랜드는 다른 업체 레시피를 표절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몬트쿠키만 두쫀쿠를 독점했다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픈소스(개방형) 소프트웨어가 성능만 좋다면 매우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결국엔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거나 시장 자체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문제는 원재료값 폭등이다. 너도나도 두쫀쿠 유행에 편승하다 보니, 순식간에 수요가 급증해 버린 결과다. 특히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피스타치오 반죽의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피스타치오 수입 단가는 이달 기준 톤당 약 2,800만 원에 달한다. 1년 전(약 1,500만 원)과 비교하면 84%나 치솟은 가격이다.
이 와중에 '골목상권 침해' 논란도 일고 있다. '원재료 확보'와 '대량 생산'이 수월한 편의점 업계와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업체마저 두쫀쿠 또는 유사 상품을 줄줄이 내놓은 탓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두쫀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지만, 두쫀쿠 열풍 덕에 모처럼 활기를 띤 골목상권을 또다시 '공룡'이 잠식하려 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이런 행태를 꼬집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 누리꾼은 "소상공인이 개발한 메뉴라 출처가 명확한데도, (대기업이) 이름만 바꿔서 베끼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다른 누리꾼은 "두쫀쿠는 자영업 카페 사장님들의 동아줄인데, 지금 그것조차 위태롭게 됐다"고 우려했다. "독과점 기업의 재료 싹쓸이, 상도덕은 어디 갔나" "불경기에 자영업자들이 희한한 과자 팔아서 재미 좀 볼 때 그걸 못 내버려 두나, 진짜 눈치 없다" 등의 목소리도 잇따른다.
■ 지식재산처 "제2의 '덮죽 사태' 막겠다"'인기 레시피'를 우후죽순 따라 하는 문화가 한국 외식 산업의 후진적 특성이라는 지적도 있다. '요리 창작물의 지적재산법적 보호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임병웅 변리사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프랑스는 레시피와 그 창작자를 보호하는 문화가 굉장히 발달해 있고, 레시피명에 창작자 이름이 병기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어 "(프랑스의 경우) 그렇게 창작자 명예가 높아지면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있다"며 "그런데 국내 외식 산업에선 남의 레시피를 베끼는 게 당연히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무분별한 레시피 도용에 경종을 울린 사건도 있었다. 2020년 발생한 '포항 덮죽 사태'다. 당시 SBS 예능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한 경북 포항시의 한 자영업자는 밥 위에 각종 건더기를 얹은 '덮죽'을 공개했는데, 이를 프랜차이즈 업체 A사가 따라 하며 가맹점 모집에 나섰던 것이다. 해당 자영업자는 SNS를 통해 "내가 개발한 덮죽 레시피를 A사가 무단 표절했다"고 호소했고, 이는 대중의 공분으로 이어졌다. 결국 A사는 공개 사과와 함께 덮죽 사업을 접었으며, '원조 덮죽' 개발자는 상표권을 취득했다.
지식재산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소상공인의 지식재산권 출원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도 마련했다. 2022년부터 추진 중인 '소상공인 지식재산 역량 강화' 사업이다. 소상공인이 보유한 상호(상표권), 레시피(특허권) 등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출원하도록 돕고, 그 비용의 80%를 정부가 지원하는 게 골자다. 임 변리사는 "원작자의 레시피를 존중·보호하고, '쉽게 베끼지 않는다'는 공동체 규범이 먼저 형성돼야 한다"며 "이런 사회적 합의가 자리 잡은 다음, 소상공인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법적 틀 마련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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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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