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미국·영국·일본 등 16개국 주도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출범했다. 4차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1차 오일쇼크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서다. IEA의 위기 대비 조치 중 핵심은 90일 치의 비상 비축유 의무 확보, 석유 수요 억제 비상계획 상시 준비, 연료 전환, 가용 석유 할당·비상 융통이다. 오일쇼크 4중 완충장치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90일 치 비상 비축유 보유’ 요건을 충족해 IEA 회원 자격을 얻었다. 이후 비축량을 더 늘려 2015년 12월 301일 치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비축량은 문재인 정부 시절 200일 치를 밑돌며 한때 169일 치까지 곤두박질쳤다. 200일 치를 다시 넘긴 것은 정권 교체 후였다. 현 정부도 비축량을 210일 치 안팎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 중이다. 다만 높은 대외 에너지 의존도, 동북아시아 안보 위기를 감안해 네덜란드(지난해 11월 기준 413일 치), 덴마크(345일 치)처럼 300일 치 이상을 비축할 필요성도 상존한다.
■최근의 이란 전쟁 충격 속에 IEA 32개 회원국이 11일 사상 최대 규모인 4억 15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합의했다. 그중 1억 7200만 배럴은 미국이 푼다. 일본도 8000만 배럴이나 공급한다. 미국 정부와 적극 보조를 맞춰 관세 압박을 피하고 역내 안보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비축유 중 2246만 배럴을 내놓기로 했다. 아울러 시중 유가를 통제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다. 다만 또 다른 오일쇼크 완충장치인 수요 억제, 연료 전환 정책은 아직 꺼내 들지 않았다.
■앞서 노무현 정부 때는 2003~2004년 이라크발 유가 파동에 맞서 비축유 방출에 그치지 않고 에너지 고효율 구조 전환을 위한 산업계 세제 지원, 범국민 소비 절약 대책으로 경제 혁신을 유도했다. IEA 회원국이 아닌 중국도 그간 전기차 보급 확대, 원자력발전소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연료 전환을 꾀하고 비축유를 대폭 늘려 석유 위기에 대비해 왔다. 우리 정부도 유가 응급 처방을 넘어선 근본적 에너지 수급 체질 개선 정책을 내놓을 때다.
<민병권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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