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비 내리는 날 동대문 광장을 걷다 우주 비행체 같은 형상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LA의 그랜드 애비뉴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WDCH)이 떠올랐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LA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서로 다른 대륙에 서 있지만, 놀라우리만치 닮은 메시지를 품고 있다. 단순한 문화공연시설이 서 있는 게 아니라 도시가 두 건축을 통해 선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은 DDP를 통해 ‘디자인 도시’를 꿈꾸었고,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LA는 디즈니 콘서트홀을 중심으로 다운타운을 ‘문화의 중심지’로 다시 불러 세웠다. 두 건축가는 단순히 독특한 형태를 시험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건축이 인간을 위축시키기도 하고 해방시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건축가였다.
직선을 해체한 두 건축가의 작품에서 건축은 더 이상 네모난 상자가 아니라 흐르는 지형으로 바뀐다. DDP의 금속 피부는 햇빛에 따라 색을 바꾸고, 곡선의 경계는 시작과 끝을 숨긴다. WDCH의 외벽은 마치 바람에 부풀어 오른 돛처럼 도시의 빛을 반사한다. 그 건물들은 도시의 풍경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건축은 기능을 넘어 하나의 감각,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 건축은 곡선의 언어로 도시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건축이 질문을 멈출 때, 그것은 곧 기념비가 된다. 그리고 기념비는 종종 침묵 속에 서 있게 된다.
DDP는 서울의 가장 급진적인 건축 선언이다. 과거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자리 위에 내려앉은 이 거대한 곡선은 근대 건축의 언어-직선, 반복, 효율-를 거부했다. 그것은 과거를 복원하지 않았다.
대신 미래의 이미지를 현재에 앞당겨 놓았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더 이상 기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고, 이미지를 생산하는 도시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슴 벅찬 장면이다. 그러나 동대문 시장의 밤샘 노동과 봉제공장의 리듬은 이 건축의 매끈한 표면과 쉽게 섞이지 않는다. 노동의 시간과 소비의 이미지는 같은 풍경 속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로 남아 있다.
LA의 WDCH 역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겼다. 이 건축은 도시의 문화적 위상을 높였고 세계적인 공연과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랜드 애비뉴를 따라 늘어선 그랜드 호텔, 현대예술박물관, 브로드 박물관 같은 기념비적 건축물들은 하나의 살아 있는 ‘장소’를 만들지 못하고, 서로 떨어진 조각들처럼 서있다. 화려한 공연장의 문턱은 높고, 그 주변 거리에는 여전히 불평등과 홈리스의 문제가 남아 있다. 건축의 곡선은 도시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도시의 현실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이 곡선은 도시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또 하나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냈을 뿐인가?
도시는 건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의 시간을 스치며 살아가는 장소의 기억으로 이루어진다. 공공건축이 진정으로 살아 있으려면, 그것은 기념비가 아니라 만남의 기술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삶이 마주치고, 때로는 엇갈리더라도 같은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장소.
화려한 곡선 아래 숨은 침묵을 듣는 일, 어쩌면 그것이 오늘 도시 건축이 다시 시작해야 할 철학일지도 모른다. DDP와 WDCH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다. 건축이 단순히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자리’가 될 때, 도시는 다시 시민에게 말을 건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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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성 LA 포럼 회장·도시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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