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지역 한인교회 ‘침묵의 탈출’현황과 해법

2019년 조지메이슨대에서‘캠퍼스 미니스트리’(Campers Ministry)를 시작해 주목을 받고 있는 박찬주·권민지 선교사 부부(오른쪽)와 차세대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워싱턴한인교회협의회장 이택래 목사.
워싱턴 지역 한인교회들의 위기를 언급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부분 이민 1세대 중심이라 고령화 문제를 비롯해 한인 이민자도 줄어,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한인교회들의 숙원 과제인 ‘차세대 신앙 계승’은 대형 교회는 물론 교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한인교회의 생존이 달린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인 1세대가 세운 교회들은 고령화로 인해 교인 수가 줄고, 이를 대신할 1.5세-2세들도 교회를 떠나면서 이러한 현상을 ‘침묵의 탈출’(silent exodus)이라고 부른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한인교회의 절반 이상(54%)이 앞으로 10년 안에 쇠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민 유입 감소와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변화 속에서 교계 지도자들은 “차세대 사역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1세대 고령화·이민자 감소 등 생존 위기
10년내 한인교회 절반 이상 쇠퇴 예상
차이 인정·상호 존중·동역자로 세워야
■인구·세대 변화의 소용돌이
미주 한인교회 수는 과거 수천 개에 달했으나 최근 급격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교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20~45% 가까이 줄어든 곳도 있다. 고령화, 신규 이민자 및 유학생 유입 감소, 2·3세대의 영어권·다민족 교회 이탈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워싱턴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1세대 중심의 한국어 예배(KM)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2세대들은 언어나 문화적 격차, 권위주의적 교회 문화, 정체성 혼란 등으로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한인교회에서 성장한 청년부 사역자는 “1세대들은 교회를 통해 정착하고 사교도 하지만, 영어권 2세들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하고 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차이 인정 부족”
최근 버지니아 남침례교(SBCV) 한인교회연합회(KCF)가 개최한 ‘차세대 사역 워크샵’에서도 이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루었다. 이들은 “개별 교회의 성장보다는 차세대 영혼 구원과 신앙 계승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차세대 사역이 성공하면 교회 전체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공 사례로 2세 목회자 중심으로 전환하거나 한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민족 사역을 병행하는 교회들이 거론됐다.
워싱턴한인교회협의회장 이택래 목사는 “세대 차이를 이해하고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기는 쉽지 않다”며 “결국 2세 사역을 포기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다시 1세대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교회를 다니며 차세대 사역, 연합 프로그램 지원 등을 당부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회들이 많았다”며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차세대 사역의 실천 방안으로 동시통역 예배, 영어 사역(EM) 강화, 1세대와 2세대가 함께하는 공동 사역 프로그램 그리고 무엇보다 2세 리더십 육성과 권한 위임 등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사실 언어 소통의 문제보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부족하다”며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동등하게 목소리를 내고 책임도 지는 리더의 역할을 부여하면 그들이 1세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 사역의 주체는 바로 청년”
워싱턴 지역 차세대 사역의 대표적인 사례로 조지메이슨대에서 시작된 ‘캠퍼스 미니스트리’(Campers Ministry)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학생들을 상담하며 기독교 동아리를 이끌어온 박찬주·권민지 선교사 부부는 2019년 캠퍼스 사역을 시작했다.
4년이면 졸업하고 떠나게 될 대학생들을 사역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교회는 없었다. 신앙적 사춘기를 겪는 그들과 소통하며 지역 교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혹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선교의 종점’이라고 걱정했지만 이들 부부는 “지난 8년을 돌아보면 이제는 캠퍼스 밖으로 확장돼 세대와 세대, 문화와 문화, 교회와 세상을 연결하는 선교의 시작점이 됐다”고 말했다.
30대 초반인 이들은 한인교회와 미국교회를 모두 경험했으며 1세와 2세 양쪽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민 온 권민지 선교사는 “정작 한국교회는 변화하고 있는데 오히려 미주 한인교회는 수십년 전 이민 초창기 모습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며 “주변을 겉돌 수밖에 없는 2세들은 한인교회를 떠나게 되고, 이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받고 싶은 문화적 차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민 초기, 부모보다 영어를 잘하는 한인 자녀들은 부모를 대신해 공문서도 처리하고 어딜 가든 통역을 전담했다. 그러나 정작 한인교회에서는 여전히 어린 자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됐다.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청년부 전도사로도 활동했던 박찬주 선교사는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아니라 교회에 남아있는 청년들에 주목해야 한다”며 “교회를 개척한 1세대와 달리 부서 사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2세대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 그들 또한 교회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사람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서로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노력, 청년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고, 교회의 허리가 되는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며 “청년 사역의 주체는 바로 청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지붕 두 가족
일부 한인 교회들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1세·2세가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로 공존하면서 상호 의존적인 모델을 구축한 교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여전히 1세대의 희생 정신과 2세대의 자유·개인주의가 충돌하는 현장을 경험하고 있다.
자원 부족도 큰 장벽이다. 특히 소규모 교회들은 전문 사역자를 채용하거나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어려워한다. 한 2세 목회자는 “차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것은 복음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교회가 그들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정체성 교육을 가정과 사회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교회가 문화적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 성공적으로 전환한 교회들은 신앙 계승과 문화적 적응을 동시에 이루며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2세가 주도하는 선교와 사회 참여 사역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한인교회의 미래는 결국 ‘다음 세대를 어떻게 품고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영혼 구원과 제자 양육으로의 리셋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교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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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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