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투기의 무차별 사격은 내 얼굴에 큰 상처를 남겼고 내 인생을 망쳐 놓았습니다. 미국은 이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20일 아침 경남 함안군 군복면 장지리 부근에서 갑자기 나타난 미 공군기들의 집중사격으로 안면에 총탄이 스치고 지나가 왼쪽눈을 실명하고 큰 흉터가 남게 된 황계일씨(58)는 22일 미군학살만행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51년전의 처참했던 순간을 미 주류언론에 낱낱이 전했다.
당시 7세였던 황씨는 8월18일 피난차 진해로 가다 함안군 장지리 남산벌 벌판에서 2,000여명의 다른 피난민들과 천으로 천막을 치고 있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할 수 없지만 갑자기 비행기 한 대가 나타나 상공을 선회한 뒤 돌아갔고 잠시 뒤 전투기들이 나타나 피난민을 향해 총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팔에 안겨 있던 황씨는 아버지의 턱을 관통한 총탄에 안면을 맞아 왼쪽 부위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 상처가 아물기까지 1년이 걸렸고 대구의 한 병원에서 정식 치료를 받은 것은 10년 뒤였다. 하지만 이미 주저 앉은 코뼈와 왼쪽 눈 부위에 생긴 큰 흉터는 손을 댈 수 없었고 눈물샘이 크게 훼손돼 수시로 흘러 내리는 눈물을 닦아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됐다.
기자회견 동안 세면용 타올로 계속 흘러 내리는 눈물을 닦아낸 황씨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피난민이었고 피해가 엄청났다"면서 "피난민 대열에는 인민군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 50여년을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지내왔지만 이젠 진실을 밝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황씨와 함께 미국을 방문중인 전민특위 경남 대책위 집행위원장 조현기씨는 "황씨가 부상을 입었던 장지리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이외에 경남지역에서만 20여곳이 미군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21일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진행중인 황씨의 피해증언은 22일 LA를 거쳐 24일 뉴욕, 25일 보스턴에서 각가 열리며 29일 워싱턴DC에서 마지막 행사를 갖게 된다.
전민특위는 미군의 양민학살 진상규명에 미국은 물론 세계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오는 6월23일 20개국에서 1,000여명이 참가하는 국제전범재판소를 뉴욕에 설치하고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간 뉴욕에서 워싱턴DC로 향하는 평화대행진을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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