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금융업이 처음 꽃 핀 곳은 13세기 이탈리아다. 중세의 혼란기가 끝나고 어느 정도 사회가 안정되면서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도처에 도둑이 들끓어 이들이 물건을 판 돈을 갖고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돈을 들고 다닐 게 아니라 각 지역에 분점을 둔 은행이 발행한 교환 증서(bill of exchange)를 가지고 가는 게 한결 간편하고 안전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 교환 증서는 중세의 교회가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고리대금(사실은 모든 이자 받는 행위가 포함됐다)을 탈법적으로 행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각 나라마다 화폐와 환율이 다르기 때문에 이자 지급을 환율 변동과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감출 수 있었다.
이 당시 은행은 고객들이 돈을 맡기고 이자를 받아 가는 지금 은행과는 달리 고객이 돈이나 귀중품을 맡기면 ‘보관료’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고객의 돈을 받았다. 참 옛날 이야기 같지만 요즘 미국의 현실이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는 2일 올 들어 9번째 금리를 인하했다. FRB가 한해에 이처럼 여러 번 금리를 내린 것은 1913년 FRB 생긴 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연방 기금 금리도 40년 전 케네디 시절 이후 최저인 2.5%로 떨어졌다.
이건 은행간 대출 금리이니까 고객들이 은행에 맡기고 받는 이자는 이보다도 더 낮은 1% 정도 수준이다. 연 인플레가 3%선임을 고려하면 실질 금리는 마이너스다. 따지고 보면 은행에 돈을 맡기고 보관료를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FRB가 이처럼 금리를 내린 것은 가뜩이나 경기가 둔화되고 있던 시점에 사상 최악의 테러까지 겹쳐 극도로 위축된 투자가 및 소비자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금리를 낮추면 은행에 돈 맡기는 것이 억울해서라도 찾아 쓰든지 주식이나 비즈니스에 투자를 하든지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란 계산이다.
사상 최저 수준인 금리는 아직까지 버텨온 경기의 마지막 보루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불경기를 막을 수 있을 지에 관해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찬반 양론이 갈리고 있다. 한쪽은 9번이나 금리를 내렸는데 경기가 이 정도면 불황은 이제 피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고 다른 한쪽은 금리 인하가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좀 더 두고 보자는 낙관론이다.
통상적인 불황일 때 FRB의 금리 인하는 거의 틀림없이 효과를 봤다. 그러나 30년대 대공황과 현재의 일본 같은 장기불황 때는 약발이 듣지 않았다. 지금이 보통 불황인지 아니면 특수 불황인지가 10조 달러(미국의 GDP)가 걸린 의문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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