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 <옥세철 논설실장>
1974년이니까 조치훈이 18살 때다. 그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한해를 보내게 된다. 당시 일본바둑계를 주름잡던 초일류기사들과 싸워 연전연승을 기록했다. 후지사와·임해봉·오다케, 그리고 기타니 문하 삼총사로 불리던 가토, 다께미야 등이 그 면면들.
조치훈은 당시 일본기계의 최정상 이시다도 물리치고 일본기원 선수권전 결승에 진출했다. 상대는 백전노장 사카다. 조치훈은 파죽의 기세로 일찌감치 사카다를 코너에 몰아넣었다.
5전 3승제 도전기에서 먼저 2승을 딴 것.그러나 제3국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사카다가 승리를 한 것이다. 이 백전노장은 애숭이 조치훈에게 두판을 잇따라 내주면서 다른 한편 승부사로서 그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제4국서도 사카다가 이겼다. 그리고 제5국. 종반들어서도 유리해 보이는 상황에서 조치훈의 실착이 나왔다. 그 실착에 흔들린 조치훈은 결국 돌을 던졌다. 2대3. 대역전과 함께 조치훈이 무너진 것이다.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조치훈이 한 말이다. 대국이 끝난지 얼마후 조치훈은 사카다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조군에게는 진 게 오히려 잘된 일이다."
참담한 악몽후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세월을 지냈다. 그리고 조치훈은 마침내 신기록 수립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잇딴 ‘3패후 4승’의 대역전 드라마와 함께 기성, 명인, 본인방 등 일본의 3대 기전을 모두 거머쥔다. 그도 모자라 본인방은 10기를 제패하는 불멸의 기록을 세우고 사상 처음 두 번씩이나 3대 기전을 동시에 석권한다.
조치훈은 훗날 사카다가 왜 그런말을 했는지 이해 할 수 있게 됐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본인도 ‘그 때 사카다 선생에게 지길 잘했다’고 덧붙였다.
김병현이 호된 맛을 봤다. 월드시리즈 4차전과 5차전에서 잇따라 역전 홈런을 맞으며 마운드에 맥없이 주저 앉았다. 얼마나 아프면 주저 앉았을까. 그 아픔을 김병현은 이런 식으로 말했다.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양키 스타디엄의 악몽은 이런 면에서 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강자가 이기는 게 아니고 이기는 자가 강자다." 오직 이겨야만 살아남는 게 프로의 세계다. 악몽을 극복하고 그럼으로써 한층 몸이 굵어진 김병현을 내년 시즌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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