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 전 자궁암 검사를 끝내고 온 며칠 후 병원에서 날아온 편지에는 조직에 이상이 보이니 다시 두 달 후 검사를 해 보자고 쓰여 있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그 동안 마음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살았지만 몸이 말하는구나 싶으니 아이고아이고 눈물이 났다. 불쌍한 내 새끼들!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은 어디부터 정리한다? 시간이 한 이틀이 지나자 이 마당에 죽고 살기로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고 집에 있으면서 불확실한 사실에 걱정과 두려움을 가불해 미리 앓아 눕느니 나의 비상구를 열기로 했다. 길 떠나기.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 다는 심정인지 유럽 먼 길 떠나기에 남편은 토를 달지도 초를 치지도 않았다. 모나리자의 미소 때문인지 베니스의 상인 때문인지 로마의 휴일 때문인지 어쩌면 병원 착오였든지 재검사결과는 정상이었고 남편은 한동안 억울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다는 야릇한 표정으로 지냈다.
나 때문에 바람든 여자와 작년 시월에 뉴욕 근처로 불질러 타는 듯 하다는 단풍을 보러 가기로 한 팔월 예약 이후 들떠 있던 어느 날, 9월 11일 사태가 일어났다. TV 앞에 앉아 매일 충격 속에 지내면서 단풍보고 죽느냐 안보고 사느냐 두마음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팽팽했다. 단풍도 보고 살고도 싶은 친구와 가 본 뉴욕은 상상 보담 훨씬 비참했다. 출퇴근길에 매일 바라보던 그 상징을 잃어버린 뉴욕시민들 모두를 진정으로 위로하며 끌어 앉고 싶은 마음은 옷에 성조기핀을 다는 단순 이상의 슬픔으로 깊이 동참할 수 있었던 뜻깊은 여행이었다. 살아가면서 내 적재함량 이상의 짐이 나를 짓누를 때 도저히 내 밧데리가 더 이상 가동 못 하겠다고 빨간 불 켜질 때 나는 잠시 내 자리에서 빠져 나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나에게 시간을 낸다. 알고 깨닫는 기쁨 외에 보고 느끼고 만나는 역사나 예술 자연 사람은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힘과 용기는 물론 삶의 의지와 희망까지 듬뿍 챙겨 준다. 참사 후에 태어난 열 일곱 명의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자꾸 기도하게 되는 것도 시작은 단풍이었지만 길 떠났기에 얻은 새로 생긴 눈과 열려진 마음 때문임을 아는 나는 이래저래 당분간 길 떠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바라보면 볼수록 내 아웅다웅이 부질없음을 제 몸 부셔가며 깨닫게 해주는 바다가 한창인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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