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5년 현지서 출생, 22세때 원주민과 결혼, 직계가족만 120여명
고흥룡은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한인들이 멕시코로 이주한 1905년 8월15일 광복절에 고희민, 김순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3명의 남동생과 4명의 여동생이 있으며 여동생은 모두 티화나에 살고 있다. 어머니 김순희는 104세까지 장수했으며 아버지 고희민은 일어, 중국어, 스패니시에 모두 능하고 노예노동에서 풀려난 뒤 전기회사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22세에 17세의 마야 원주민 마리아 델라 크루즈와 결혼해 아들 6, 딸 6을 두었다. 직계가족만 현재 120여명에 달할 정도이다. 고씨는 현재 메리다에서 맏아들 호세 아순시온(68), 여섯째딸 에디 노타(56)와 함께 살고 있다. 택시운전을 하는 11번째 아들 루벤이 가끔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한 아름 안고 아버지 집을 방문하곤 한다. 고씨도 에네켄(어저귀) 따는 일로 평생을 보냈다.
10번째딸 마리아 크루즈는 현재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팍에 살고 있다. 마리아는 멕시칸과 혼인한 것으로만 알고 있으며 20년째 연락이 두절돼 죽기 전에 얼굴이라고 보고 싶은 것이 고씨의 간절한 소원이다.
고씨는 "한인들이 짚신을 신고 에네켄을 따면서 가시에 찔려 고통을 당하고 농장주가 채찍으로 때리면 울기도 하는 등 고생이 매우 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청소년 시절 메리다를 방문한 안창호 선생이 한인회관에서 한인들과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메리다에서 초등학교 3년 과정을 졸업한 것이 전부인 고씨는 97세의 고령이지만 아직 건강하고 이민 후예들 가운데 한글을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며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한글학교에 참석해 한글을 계속 배우고 있다. 고씨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여력이 없어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의 집 벽에는 애국가 4절까지 적힌 액자와 한복을 입은 여인이 있는 캘린더가 걸려 있어 조국 사랑을 절로 느끼게 한다.
최근 한인교회의 한 평신도가 한국으로 그를 초청하겠다고 했지만 노령에 한국을 방문했다가는 수명을 단축할 수도 있어 걱정이 태산 같다. 주위에서는 멕시코 이민의 산 역사인 그가 한인들의 멕시코 이주 100주년이 되는 2005년까지 생존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사별한 마야 원주민 아내와 70년을 함께 살았지만 한국 여자와 결혼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된다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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