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의 정도가 많이 부드러워져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놀이 소리가 들리는 듯한 아침이다. 중년의 내 마음까지 진홍의 단풍으로 물든다. 이 아침도 분주히 부엌을 오가며 아침과 도시락을 준비하다 옛날 생각에 잠시 일손을 멈추고는 슬며시 웃는다.
내 나이 마흔을 훨씬 넘어섰지만 나와 비슷한 연배에 있는 이들은 학창시절 도시락에 얽힌 추억거리를 한 두 가지 안 가져본 사람들은 없을 것 같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교실 한 가운데 있던 난로에 도시락을 얹어 누룽지 앉혀 먹던 일이며, 수업시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밥 위에 김을 얹어 꿀맛 같이 먹다 들킨 일, 가방 속 김치 병이 쏟아져 만원버스 안에서 얼굴이 홍당무가 되던 일… 이렇게 많은 사건들이 가지각색의 예쁜 도시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시절 추억 속에 있던 즐거움이 이젠 남편과 딸아이의 도시락 싸주는 일로 내게 다시 돌아왔다. 서울에서는 회사에서 일 보러 다니다가 동료들과 점심을 먹게 되고 딸아이 또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왔으니 앞서 말한 도시락에 얽힌 추억거리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던 것이 한국보다 더 한국적으로 사는 미국에서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준비하게 된다. 전형적인 한국 식성인 남편을 위해서는 토속적인 반찬과 국, 지금은 파리로 유학을 가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딸을 위해서는 샌드위치를 싸주었다. 형제들이 모여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의 사무실에는 몇 가지의 밑반찬을 담고 국이나 찌개를 넉넉히 가득 담아 손이 큰 아줌마의 흉내를 낸다. 참, 엊그제 담은 김치가 먹기 좋게 익었으니 그것도 함께…
소풍 가는 사람 같이 한 가득 들고 나가는 그이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장만한 점심이 힘들게 일하는 남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이 되어준다면 내가 조금은 힘이 든들 뭐가 대수일까 싶다. 손을 흔들며 출근하는 남편의 차에서 낙엽이 한 잎 굴러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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