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볼로냐대학 법학교수에서 추기경으로, 이어 1572년 교황에 선출된 그레고리우스 13세는 가톨릭 개혁에 매진했고 교회법전 출판을 추진해 신앙심 고양에도 노력했다. 수장령과 통일령을 부활시켜 국왕을 종교상의 최고 권위로 인정하고 가톨릭을 억누른 영국 엘리자베스 1세에 항거한 아일랜드의 반란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밖에 그레고리우스는 로마 선교사업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가득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방도를 찾던 그레고리우스는 신앙보급을 전담할 교단을 세웠다. 이것이 ‘선전의 원조’로 전해지고 있다.
왠지 어감이 딱딱한 ‘선전’이 부드러워진 것은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때부터였다고 한다. 연두교서 초안을 작성하던 제퍼슨은 국민감정을 뜻하는 ‘Public Sentiment’란 표현이 맘에 들지 않아 고심하다가 ‘Public Relations’로 바꿨다. PR이란 말이 일반에 알려진 것이 바로 이 일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PR은 1904년 설립된 파커-리사가 공기업과 사기업을 일반인들에 알리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전문회사로 탄생함으로써 근대적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나 이념, 체제 등의 우수성을 퍼뜨릴 의향으로 PR이 주요 도구로 동원되기도 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PR담당의 파워가 막강했고 이보단 다소 약하다 해도 PR의 중요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도외시되지 않고 있다. 이제 PR은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서도 빼 놓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 돼버렸다.
사제들의 성추행 스캔들이 백일하에 드러남에 따라 ‘고상한’ 스타일을 왕창 구긴 가톨릭 LA대교구도 마지못해 ‘시트릭’이란 일류 PR회사를 고용했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교회의 권위와 신뢰를 다시 끌어올리려는 고육책이겠지만, 교회가 너무 세속적으로 반응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잘못된 일로 비난을 받고 이미지가 실추됐으면 그 원인을 찾아 그 뿌리를 잘라내면 되지 신도들의 헌금으로 PR회사에 지불하면서 무엇을 선전해 달라는 것인지 아리송하다"는 신도들의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제 아무리 미스 유니버스라도 진흙탕에 빠진 뒤 말끔히 씻지 않으면 아무도 그녀를 알아주지 않는 법 아니냐는 얘기다.
가톨릭 교회가 다시 살아나려면 PR보다는 뼈를 깎는 아픔으로 내부개혁에 매진해야 하는 게 아닐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나는 파랑"이라고 요란 떨지 않듯이 맑은 교회라면 돈 들여 PR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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