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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훈 편집위원>
민주주의의 발상지는 그리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 민주주의는 정확히 말하면 백인 남성주의였다.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여성과 자유인보다 수가 많은 노예, 영주권자, 외국인은 아무런 정치적 발언권이 없었다.
그리스 여성의 지위는 조선 여성과 비슷했다. 어려서는 아버지, 자라서는 남편, 늙어서는 아들에게 복종하는 ‘삼종지도’가 행해졌다. 여성의 가장 막중한 책무인 아이를 낳다가 죽는 일이 많아 평균 수명이 36세 정도였다 하니 자식에게 기댈 일은 별로 없었겠지만 말이다. 상류층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문맹이었을 뿐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재산을 가질 수도 없었다. 남편이 죽으면 시 댁 식구의 재산 취급을 받았다. 3대 비극 작가로 꼽히는 유리피데스의 ‘메데아’에 “이 세상 모든 동물 중 가장 불쌍한 존재는 여성”이란 말이 나온 게 우연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꽃핀 그리스와는 달리 로마의 전성기는 황제가 전권을 휘두른 제정시대였다. 얼핏 보기에는 로마 여성들이 그리스 여성들보다 훨씬 고달픈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로마 여성들은 참정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지만 법적으로는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 재산권도 있었고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먼저 이혼을 요구하고 따로 사는 것도 가능했다.
겉모양과 실상이 다른 것을 보여주는 예는 요즘도 많다. 서남 아시아의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인도네시아는 모두 여성이 총리를 지냈거나 지낸 나라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에서 여권이 존중되고 있느냐 하면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지참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불태워 죽이는 일이 다반사다.
반면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에서는 한번도 여성 대통령이 나온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들 나라만큼 여성의 권리가 존중되는 곳은 지구상에 없다. 그 나라 여성 지위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얼굴 마담이 아니라 그 나라를 움직이는 대기업, 언론, 고급 공무원, 법조계 등지의 요직에 얼마나 여성이 많이 진출해 있느냐를 살펴야 한다.
한국에서 건국이래 처음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DJ 정부가 진정으로 여권 신장을 원해 취한 조치라기보다는 두 아들 구속과 햇볕정책의 몰락으로 어지럽혀진 이미지를 새롭게 해보겠다는 정치 술수적 느낌이 짙다. 집권 후 지난 4년여 동안 현 정부가 이렇다할 여성 정책을 내놨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한국 남녀의 사회적 평등도를 재는 평등 지수는 아직도 세계 29위, 정치 경제적 힘의 평등도를 재는 여성 권한 척도는 세계 61위로 나와 있다. 한국 정부는 임기 7개월을 남겨 놓고 벌이는 깜짝쇼보다는 진정으로 한국 여성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뭘 해야하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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