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 젖 준다’는 속담이 있다. 혼자서 가만히 있는데 먹을 걸 들고 따라다니며 권하는 일은 드물다. 그 아이가 꾀죄죄하고 귀여운 데라고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럴수록 악악거리고 귀찮게 굴어야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
북한이 지난 수년간 핵무기를 개발해 왔다는 사실을 시인, 미국과 한중일 동아시아 각 국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1994년 체결한 핵 협정을 깨고 몰래 핵 개발을 해왔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이 사실을 ‘당당히’ 인정했다는 것 또한 의외다.
미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여름 영변 핵발전소에서 일하던 북한 요원이 망명, 미국 정부에 이 사실을 알렸으며 그 후 위성사진 등을 종합해 이를 확인하고 이 달 초 켈리 특사가 평양에 갔을 때 북한측에 따진 것으로 돼 있다. 첫날 완강히 부인하던 북한 관리들은 다음 날 태도를 바꿔 "부시가 우리를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협박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느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북한이 첫날 부인하다 하루만에 입장을 돌변, 이를 시인한 것은 두 가지 추측을 낳게 한다. 하나는 극비리에 진행해 온 핵 개발 사실을 미국이 알아내리라고는 북한도 예상치 못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를 협상 카드로 삼아 관계 정상화와 경제 원조 등 미국의 대폭적인 양보를 얻어내자는 쪽으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 납북 사실을 시인하고 100억달러의 배상금을 받으려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은 후세인 때려잡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달갑지 않은 뉴스다. 이라크 공격의 명분이 대량 살상무기 폐기다. 가뜩이나 미국의 강경 노선에 불만인 유럽과 아랍 각 국이 "핵무기 개발에 한 발짝 앞선 북한은 놔두고 이라크만 들들 볶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공격하기는 어렵다. 군사적으로 무리인데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사용하면 자신과 북한 정권은 끝장난다는 것은 김정일도 잘 알고 있다. 한국 정부로부터도 뜯을 만큼 뜯었고 신의주를 경제 특구로 개발하려던 계획도 중국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한 김정일로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런 저런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의 이번 실토는 젖을 달라는 아이의 울음소리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말도 있다. 가뜩이나 김정일에 대한 불신이 큰 부시로서는 북한의 핵 협정 위반은 ‘믿을 수 없는 상대’라는 인식을 굳게 했을 게 틀림없다. 북한이 이번 실토로 떡을 얻어먹게 될지 몽둥이 찜질을 당하게 될지 궁금하다.
<민경훈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