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서울의 3층짜리 다가구 주택에 심야 도둑이 들었다. 이 도둑은 1층 주인집 부엌에 있는 쌀독의 뚜껑을 조심스레 열고는 쌀을 됫박으로 퍼 자루에 담았다. 이를 몇 번 하다가 그만 됫박이 떨어지면서 심야의 적막을 깨뜨렸다. 주인 집 곁방에서 자고 있는 식모 아주머니가 이상한 소리에 부엌으로 달려갔고 이 도둑은 현장에서 잡혔다.
도둑은 흉기를 소지하지도 않았고 힘없는 식모를 폭행하지도 않았으며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둑을 잡은 식모는 "도둑이야"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고 다가구 주택 주민들이 모두 놀라 현장에 모여들었다.
도둑질하다 들켰으니 몸을 조아리고 두려워해야 할 도둑은 태연했다. 놀란 것은 오히려 부엌에 전등을 켜고 도둑의 얼굴을 본 주민들이었다. 도둑이 바로 같은 다가구 주택에 사는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이 도둑은 쌀이 없어 입에 풀칠을 걱정할 형편도 아니고 평소 행실이 불손하고 도벽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주민들에게 이 도둑은 "도둑질할 때의 심리상태를 체험하기 위해 연습삼아 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 성우는 드라마에서 도둑의 목소리를 내는 역을 맡아 실감나는 연기를 하기 위해 일을 저질렀다고 해명했다. 그는 당시 인기 정상을 달리던 남자 성우였다.
이 성우가 나온 만화영화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추리외화 TV시리즈는 재방송될 정도였으며, 이 성우가 광고한 기침약은 목 아플 때 즐겨 찾는 제품이었다. 출연한 프로그램을 하나만 예시해도 "아 그 사람" 할 만한 인기인이었다. 범행현장을 목격한 지인들 입에 오르는 정도였지 신문이나 방송은 타지 않은 이야기다. 아무튼 주위에선 그의 ‘연기 연습’ 이유를 받아들여 일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정숙한 부인역을 맡아 열연한 위노나 라이더가 지난해 12월 베벌리힐스의 고급의류점 ‘색스 핍스 애비뉴’에서 5,500달러 상당의 재킷과 브라우스를 훔친 중절도 및 밴달리즘 혐의에 대해 유죄평결을 받았다.
"순수의 시대는 끝났다"는 비난에 대해 라이더의 변호사는 "팬들에게 보다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훔치는 연습을 한 것뿐"이라고 변명했지만 배심원들을 감화시키지는 못했다. 남의 소중한 재산을 노리면서까지 해야 하는 연기 연습이라면, 일이 틀어져 벌을 받게 되더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말고 달게 받는 담대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말대로 연기에 미쳐 겪는 일이니 말이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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