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국 대통령선거는 한마디로 혁명적인 세대교체라고 할 수 있다. 주류 언론사 등 기성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결과는 가히 젊은 세대가 이룬 혁명이었다.
같은 또래이지만 87년 이민 온 후 한국에 돌아가 본 적이 없으니 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약 5년전의 유럽여행이 유럽보다도 한국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 IMF가 터지기 불과 몇 개월전 이었던 당시 어디를 가나 볼 수 있었던 이들은 10년전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인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영어를 제법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서툴더라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당당한 모습이나 진취적인 자세는 오늘날의 기세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10년만에 접한 본국 동포들과의 만남은 흐뭇함과 함께 실망이 섞인 경험이었다. 그때에도 잠재적인 반미감정을 느낄수 있었다. 미국을 동경하면서도 강대국인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진정한 이념에 의거했다기보다는 유행을 따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순신 장군을 앞지르고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이라는 소식도 그곳에서 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세대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배운 곳이 프라하였다.
소낙비 때문인지 우울감과 거리에 넘치는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활기찬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룬 프라하는 유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 중 하나였다. 비어 젖은 거리는 수백년 전통의 문화가 스며나오는 듯 했다. 그러나 프라하에서 만난 한국 배낭여행객들 가운데는 체코가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 자기 화폐도 꺼리는 따라지 나라라는 경멸감이 배어 있었다. 체코를 업신여겨서인지 한국 관광객들사이에 기차 요금을 그대로 지불하면 바가지를 쓰는 것이라는 풍문이 돌아 체코 집찰계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추태가 자주 벌어졌다.
체코는 공산체제 아래 68년 ‘프라하의 봄’이라는 자유개혁운동이 있었고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에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평화적으로 분리된 과정은 유고슬라비아, 이스라엘, 인도 등 비참한 유혈분쟁을 거친 타지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자유와 문화를 사랑하는 성숙된 프라하의 시민정신은 본받을 점이 많다고 늘 생각해왔다.
최근에도 부산에서만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6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물론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유행을 따르는 군중심리로 해석되지 않을까.
한국도 문민정부가 들어선지 벌써 10년이 됐다. 이번 대선과 월드컵은 2030세대의 잠재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성숙한 선진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반미시위에서 나타난 군중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재자가 영웅으로 추앙되지 않는 정치적으로 성숙된 ‘서울의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 정 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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