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일주일에 7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우리 형제들은 모두 식모의 음식을 먹고 자랐다(가정부니, 파출부니 하는 점잖은 말도 있지만 1960~70년대 그때는 모두 ‘식모’였으니 그냥 식모라고 쓰겠다).
식모의 음식이 좋을 리는 거의 없었다. 더구나 식모가 하도 자주 바뀌는 통에 우리의 입맛도 매번 식모의 음식솜씨에 따라 달라져야 했다.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이북 각지의 시골 출신인 식모들은 자기네 마음대로 음식을 했다.
그래서 김치맛이 늘 달랐고 반찬 하는 법도 제각각이었지만 먹을 것을 타박할 여유가 없던 시절, 우리는 그저 누구든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상을 차려주면 군말 없이 먹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무작정 상경하는 아줌마와 처녀들이 많았는지 우리집은 늘 그런 여자들로 들끓었다. 그냥 집 앞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식모로 써달라고 애원하는 아줌마도 있었고, 버스정거장에서 보퉁이를 안고 울고 있는 처녀를 할아버지께서 불쌍하다고 데려오는 일도 있었다. 때로는 아이를 데려와 함께 사는 아줌마도 있었는데 밤이면 처량하게 우는 품이 지금 생각하면 남편에게 학대당하다 도망 나온 여인들이었다.
그런데 처음 들어올 때 순진했던 사람들이 나갈 때는 대부분 도둑이 되어 나갔다. 주부가 전혀 살림을 하지 않는 집인데다, 낮이면 텅 비어 쌀독이나 반찬값을 슬쩍 해도 아무도 모르는 형편이니 그럴 만 했을 것이다. 점점 손이 커지다가 동네 가게들에서 외상을 실컷 그어먹고는 들키기 직전쯤 해서 집안에 쓸만한 물건을 도리해 하룻밤에 달아나곤 했다.
그런 야반도주는 여러번 일어났으므로 그때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도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지 않으면 식모가 도망간 것이다. 그럴 때면 식구들이 다들 놀라 깨어나 뭐가 없어졌나 찾아보느라 수선스러웠다.
대개 당시로서는 귀했던 시계, 언니와 오빠의 만년필이나 볼펜들, 누군가의 돈지갑, 반반한 옷가지 등이었는데 지금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절도품목은 언니들의 앨범이었다. 돌사진, 어릴 때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무용발표회하는 사진들이 꽂힌 앨범인데 그걸 갖고 다니며 자기 어렸을 때 사진이라고 거짓말을 하느라 훔쳐간다고 들었다.
식구가 많은데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5~6개씩 싸고, 하루에도 여러번 상을 차려내야 하는 집에 오래 붙어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수더분하고 착한 사람은 일에 지쳐서 나갔고, 약삭빠르고 질 나쁜 사람은 이용할 것을 다 이용해먹은 뒤 반드시 물건을 훔쳐 나갔다.
아주 어릴 때, 네 살 때쯤의 기억인데 나와 동생은 식모언니에게 학대를 당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야단을 치면서 청소를 시키는 것이다. 깨끗이 안 치우면 밥을 안 주겠다고 협박하기도 했고, 실제로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엄마 아빠에게 이르면 혼내준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나는 정말 그 언니가 나갈 때까지 입도 못 열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식모는 집으로 찾아오는 방물장수, 떡장수 같은 사람에게 뒤주에서 쌀이나 설탕, 김치를 퍼주고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사기도 했다. 그 사실을 알게된 아버지가 몇번이고 자물쇠를 사다 뒤주를 채웠으나 소용이 없었다. 가위 끝으로 기가 막히게 열어 젖히는데, 청계천에서 사다 건 미제 시어즈 자물쇠도 그 손재주를 당하지 못했다.
이렇듯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식모들이 해주는 막음식을 먹고 자란 우리 여섯 딸은 그러나 자랑스럽게도, 결혼해서 모두 요리 잘하는 주부들이 되었다. 타고난 것인지, 노력에 의한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곳에 있는 언니와 동생은 물론, 어쩌다 서울에 가서 언니들의 집을 한바퀴 돌고 오면 해주는 음식마다 어찌나 맛있는지, 어머니의 음식을 전혀 못 먹고 자란 딸들 같지 않다. 아마 어머니가 요리를 잘 하는 분이셨다면, 우린 모두 요리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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