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초등교에 후원금 보내는 배창선·배영석씨
전쟁중 고아돌보고 미국선 사랑전하고
설 잔치가 한창이던 지난달 31일 윌셔 초등학교. 오색 색동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어설픈 세배를 드리는 어린 학생들에게 세배돈으로 1달러를 나눠주고 등을 두드려 주는 배창선(86) 목사와 부인 배영석(77)씨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교육자로서, 또 목회자로서 걸어온 지난 인생이 맺은 작은 결실을 바라보는 그 차체만으로도 이들 노부부에게는 큰 기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배 목사 부부가 이 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4년 전부터다. 당시 이 학교가 재정난으로 폐교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지 않은 돈을 기부했고 이후 매달 후원금을 보내며 어린 학생들에게 가끔 편지를 통해 꿈과 용기를 심어줬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평소 존경해 온 도산 안창호 선생의 ‘배워야 성공한다’는 말씀을 실천한 것 뿐이었다.
사실 배 목사는 반평생을 교육계에 몸담아 왔다. 황해도 옹진출신으로 일본에서 공부를 마친 뒤 귀국해 옹진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인재육성이란 나름대로의 목표를 갖고 있던 배 목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기도 김포에서 시작한 피난생활 속에서도 유경중학교를 설립해 후학을 육성하고 전쟁고아들을 돌봤다.
휴전이 되자 김포 통진 중고등학교에서 다시 평교사로 출발해 교장까지 오른 배 목사는 지난 1980년 미국으로 이민오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목회자의 길을 택했고 네브래스카주와 중가주 에드워드 지역 등에서 목회생활을 하다 10년전 샌디에고 순복음 교회를 끝으로 목회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때 나이 76세였던 배 목사는 또다른 인생을 꾸미기 시작한다. 한의대에 진학한 것이다. 돈을 벌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려는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2년 뒤 학교를 마친 배 목사는 병원 대신 교회와 이웃들을 찾아 다니며 인술을 베풀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라는 기자의 부탁에 “노인이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선생님이 가르치는대로 잘 따르면 그만 아닌가요”라며 손을 내젖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인생의 여유와 보람, 기쁨이 절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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