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5대양 6대주에 200개가 넘는 나라가 있다. 나라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법과 관습도 천차만별이다. 이같은 다양함 속에서도 어디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률이 하나 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때려서는 안된다는 것과 가만히 있는데 누가 때리려 할 때는 맞서 싸워도 좋다는 규칙이다. 자위권으로 불리는 이 원칙은 동서고금을 통해 개인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적용되는 것으로 널리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이 원칙에도 예외는 있다. 지금은 가만히 있더라도 과거에 죄를 저지른 일이 있거나 앞으로 저지를 우려가 있는 경우는 사법 당국에 의해 체포될 수 있다. 개인간에는 통용되는 이 원리가 국가 간에도 적용될 수 있느냐를 놓고 서구에서는 오랜 논쟁이 있었다. 국가 사이에도 정당한 명분이 있을 때는 먼저 전쟁을 걸 수 있다는 ‘정의로운 전쟁’론을 처음 편 사람은 로마의 웅변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였다. 그의 생각은 그 후 오거스틴과 아퀴나스에 의해 집대성돼 서양의 주요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과연 이것이 ‘정의로운 전쟁’에 해당되는지에 관한 논란이 분분하다. 이 문제에 한인들이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은 짙어져 가는 한반도의 전운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반대”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과는 달리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전쟁도 옵션”이라는 게 부시 행정부의 생각이다.
최근 ABC 방송의 주요 시사 프로그램인 나이트라인에서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내보낸 적이 있다. 군사 전문가 4명이 둘로 나뉘어 각각 미국과 북한 편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내용으로 결과는 미국의 승리로 끝나지만 막대한 인명이 살상될 것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한 전문가가 한국 희생자는 50만, 북한은 200만으로 추산하자 다른 전문가는 “이는 너무 적은 숫자”라며 한국만 500만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은 개전 수 시간 내 수십만 발의 대포와 미사일을 쏠 수 있는 중화기를 휴전선 일대에 잔뜩 배치해 놓고 있다. 경제는 거덜나고 국제적으로도 고립된 북한이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서울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번 주 타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과 의견이 다른 것은 전쟁에 관한 것뿐”이라며 “이 또한 두 나라 사이에 대화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라는 문제는 가냐 부냐만 가능할 뿐 타협이 이뤄지기 힘든 성질의 것이다.
한국이 전쟁의 참화를 우려하고 있다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가 테러 집단에 넘어가는 것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겠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에는 머지 않아 북한을 공격하는 것이 ‘정의로운 전쟁’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미국 조야에서 벌어질 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양국의 의견 차이를 좁힐지 궁금하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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