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클라호마의 연방정부 청사에서 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생존자를 찾아 나선 한 소방대원이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한살배기 아기를 발견했다. 피투성이가 된 어린 생명은 소방대원의 두 팔 위에서 그대로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아기의 사진 한 장이 사람들의 마음을 찢었었다. 이 사진이 영예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은 폭력의 잔악함과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운 때문이다.
테러와 전쟁의 틈바구니에 끼인 어린이들은 하소연할 데도 없다. 1990대 말 코소보, 어제만 해도 좋은 이웃이었던 그리스정교의 세르비아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폭도로 변해 총을 들이대자 회교도인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거의 맨 몸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세르비아측의 공격으로 빚어진 내전으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이라 겨우 걸음마 할 정도의 아기도 철조망을 넘어야 했다. 어른들이 손발을 잡아주었지만 군 훈련소에서나 봄직한 ‘철조망 통과’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2000년 퓰리처 수상 작인 이 사진은 어린이를 희생자로 만든 어른들을 부끄럽게 했다.
1988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에는 집 대문 옆에서 아버지가 아기를 감싸안은 채 쓰러져 있는 사진이 게재됐었다. 소리소문 없이 스며오는 살인개스를 마시고 고통 속에 숨을 거둔 아버지와 아기의 처참한 장면이다.
사담 후세인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자신에 반기를 든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해 수천 명이 몰살했을 때 일이다. 어린이까지 무차별 살해하는, 그래서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기회 있을 때마다 거론하는 ‘후세인의 화학무기 위협’을 소리 없이 웅변하는 한 컷이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달아오르면서 어린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파를 타고 퍼진다. 바스라 근처에서 복부에 유탄을 맞은 여섯살짜리 소년은 영국군 의무병의 치료로 목숨을 건졌으나 가슴부터 배꼽까지 약 15cm 가량 이어지는 봉합자국은 거칠고 선명하게 사진에 남아 ‘전쟁의 반 인륜’을 고함치고 있다.
병든 네살짜리 아들과 함께 나자프 인근 미 포로수용소에서 수감돼 있는 한 이라크인이 포로용 두건을 뒤집어쓴 채 아들의 머리를 만져주고 있는 모습을 철조망을 통해 찍은 사진이 여러 신문의 1면에 실렸다. 얼굴이 가려진 상태인데도 아들에게 땡볕이 내리쬐지 않도록 자신의 등으로 막고 보듬는 아버지의 품에서 아이는 “아빠가 왜 얼굴을 가렸지?”하고 궁금해하는 것 같다.
어른들이 저지른 전쟁이 총도 쏠 수 없고 철모도 쓸 수 없는 어린이들에겐 가혹하기만 하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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