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농부아들 1954년 교육계투신
교사권익 향상위해 노조설립
올해 84세인 초기 이민자 2세 케네스 김씨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인 최초의 전문직 노조활동가다. 몬테벨로 교육구 교사노조의 창립멤버로 1954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41년 동안 교사와 노조 지도자로 헌신한 김씨는 한인 이민 선조들의 후예들이 주류사회에서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하며 기여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1910년 샌프란시스코에 입국한 김계선씨와 사진신부 원의정 여사의 7남매 중 막내인 김씨는 1928년 북가주 스탁턴시에서 태어났다. 떠돌이 농부였던 부친을 따라 새크라멘토, 스탁턴, 몬테벨로 등을 돌아다니며 삶을 꾸렸던 김씨 가족은 1930년 부친 김계선씨가 암으로 세상을 등지면서 몬테벨로 지역에 눌러 앉았다.
김씨 가족은 이곳에 정착한 뒤 작은 식품가게를 운영했으나 공황으로 인해 곧 문을 닫았다. 이후 모친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화원에서 일하며 7남매를 키웠다. 김씨는 “당시 몬테벨로에는 일본인들이 화원과 요양소를 많이 운영했다”며 “2차 대전 당시 수용소에 격리됐던 일본 사람들은 재산을 헐값에 처분했고, 상당수는 재산을 빼앗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54년 위티어 칼리지를 졸업한 뒤 몬테벨로 교육구 교사로 채용된 김씨는 13년 동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1년 동료교사들과 함께 교사노조를 설립한 그는 1967년 제3대 사무국장으로 임명되면서 노조 활동에 전념하게 됐다. 가주 교사노조와 몬테벨로 교사노조에서 활발히 활동한 김씨는 “당시로는 생소했던 교사들의 파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교사의 권익을 높이는데 일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부인 메이블(76) 여사는 1903년 한국 정부로부터 정식 여권을 받급 받아 하와이에 건너온 이재수씨와 프랑스 여권을 소지했던 백재선 여사의 2남3녀 중 장녀로 맥스웰과 샌타로사, 하시엔다, 라푸엔테에서 21년 동안 교사로 봉직했다. 그녀의 오빠인 해리와 데이빗씨는 북가주에서 ‘리 브라더스’라는 농장을 운영하며 큰 부를 쌓아 한때 레이크 타호의 카지노를 소유하기도 했던 백만장자다.
지난 1994년 은퇴 후 하시엔다 하이츠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김씨 부부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한인 교사는 너무 부족하다”며 한인 2세들이 교직에 많이 진출할 것을 당부했다. 평생을 노조에서 일한 전문가답게 김씨는 “여전히 교사노조는 필요하다고 믿는다”며 노조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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