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숙 칼럼
▶ 10년만에 방문한 한국 <5>
오랜만에 한국에 나온 내게 잘 해주느라 하루는 고교 동창 두 명이 나를 서울 근교로 데리고 갔다. 건망증 때문에 그 도시의 이름을 잊었지만, 거기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 기념관이 있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고가들이 고즈넉한 한국적인 정취를 물씬 발산하는 좋은 곳이어서, 막 결혼한 두 쌍의 부부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나도 이 좋은 곳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고 여기 저기를 다녔다. 그러나 “여기다!"하고 카메라로 구도를 잡으려 하면 어김없이 <산채 정식 0000원> <오리 황토 구이 전문> 등 제멋대로인 대형 간판을 앞세운 음식점들과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주차한 자동차들이 그 풍경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무참하게 깨뜨리며 끼어 들어와 있었다. 이렇게 운치 있게 기념관을 잘 만들어놓고서 그 주변 건축물, 간판, 주차장 등에 대해서 전혀 규제를 하지 않은 당국의 처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지방에 내려간 적이 있다. 비행기 창으로 내려다 본 한국의 모습은 한 마디로 아파트의 숲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 규모 아파트 단지들. 우리 나라의 산수는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이 수려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처럼 무계획적으로 개발을 한 나라가 지구상에 또 어디 있을까. Zoning(용도에 따른 지역 구분)이란 개념도 없이 주택과 상가와 학교와 유흥가들이 한 데 뒤엉키고, 아름다운 산과 강, 호수와 바닷가에도 여기 저기 울긋불긋 분홍색 연두색 하늘색 등으로 페인트칠을 한, 아니면 시커먼 회색 콘크리트의 고층 아파트들과 유흥시설들이 엉망으로 들어서 있어서 자연경관을 손상하고 있다. 거기에다 상습적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수많은 자동차들과 어떤 규제나 가이드라인도 없이 마구 세워진 추하기 짝이 없는 대형 간판들...
사람들은 "10년만에 와 보니 어떠냐?"하는 질문을 많이 했다. 나는 솔직히, “응, 사람들의 살림살이 수준은 많이 향상된 것 같다. 그러나,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공기 오염이 심각하고, 환경 훼손이 극에 달해서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떤 경치 좋은 곳이 세상에 알려지기만 하면 금방 음식점, 여관과 쓰레기로 뒤덮인다. 거기에다 희귀한 동식물은 무작정 채취하고 수렵해가서 곧 씨가 마르게 된다.
그런 곳은 그래도 참을 수가 있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를 가 봐라, 정말 기가 막힌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10년 전에 경주를 가 봤었다. 이 번에는 도저히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역사가 살아 숨쉬는 왕릉과 고분들,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유산과 유적들 사이사이로 뒤죽박죽 솟아 있을 아파트 빌딩들, 음식점과 숙박시설들을 상상만 해도 속이 매스꺼울 지경이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아파트와 온갖 흉한 건물들을 다 부숴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철저히 계획하여 새로 도시들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아파트 단지 안이나 인근 지역에 상가와 병원, 학교가 함께 있는 편리함에 너무 깊이 길들여져 있다. 이런 시설들을 주거지역에서 내몰아 다른 지역(zone)으로 옮겨놓으면 불편하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기능별로 구분/정돈되고 아름다운 도시보다는 나 한 몸의 편리함을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또 사회운동을 벌여서 가구 당 자동차 대수를 줄이도록 하고, 간판에 대한 새 규정과 법을 만들어서 추한 간판들을 갈아치우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또 문화유적지나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서는 현재 있는 건물과 시설물들이 오래 되어 재건축을 요할 때가 되면 부수어 버리고 다른 곳에 짓도록 할 수 있다. 음식점, 여관 등은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기존 건물들은 세금 혜택이나 융자, 또 여러 가지 잇점을 제공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실행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대대손손 물려줄 우리 국토요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꼭 해야할 일이다.
이런 일에 ‘국민 통합’이 필요하고 리더쉽이 필요하다. 우리 한국인들도 이제 해외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드물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이처럼 자연을 훼손시키고 수 천년 역사가 깃든 유적지들을 망쳐놓은 곳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반만년 역사’를 입으로만 자랑하고 실제로는 걸레조각보다도 못한 대우를 하지 않았는가.
가까운 일본은 깨끗한 자연이 보존되고, <문화유산의 나라>로 유네스코에 등록 될 만큼 역사적 문화환경도 잘 가꾸어 온 나라이다. 그들도 개발시대에 인간의 탐욕과 단견 앞에서 자연과 문화환경이 파괴되는 일을 겪었다.
우리와의 차이는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하여 ‘고도(古都) 보존법’이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고 그 법이 제정된 후 40년 가까이 거의 완벽하게 이행되어왔다는 점이다. 우리라고 왜 못할까? 경주와 부여와 서울의 시민들은, 또 많은 시민단체들은 자연적이고 역사 문화적인 환경보존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2만 달러 국민 소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애팔래치안대 정보기술 시스템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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