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으론 두번째…김진형 전 교민회장 아들
‘사회정의 구현에 앞장서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죠. 법조계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끈기를 갖고 목표를 향해 매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작년 8월13일 패리스 글렌데닝 메릴랜드주 주지사에 의해 한인으로는 두번째로 메릴랜드주 판사로 임명된 김국현(42·브라이언·사진)씨는 인터뷰 도중 판사가 된지 벌써 1년이 지났다고 기자가 말하자 “벌써 그렇게 됐나요”라고 말하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몽고메리 카운티 법원 판사로 일하며 하루평균 250명의 범법자들을 다루는 김 판사는 범죄 용의자 한사람, 한사람을 법정에서 대할 때마다 연민의 정을 느낀다며 한인들에게 “꼭 법을 준수하며 살 것”을 당부했다. 김 판사는 한인들의 경우 LA와 마찬가지로 가정폭력과 음주운전으로 체포돼 법정에 서는 사람이 가장 많다며 자신에 대한 절제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사고 예방책임을 강조했다.
지난 95년, 96년 두 차례에 걸쳐 고배를 마신 후 세번째 도전, 판사직을 쟁취한 김 판사는 61년 한국에서 태어나 65년 일본에 이어 68년 미국으로 유학 길에 오른 아버지 김진형(70·전 코리아타운 교민회장)씨를 따라 도미, LA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 꿈은 변호사였다는 김 판사는 95년 툴레인 법대를 졸업한 뒤 약관 25세의 나이에 메릴랜드주 법무부 변호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소수계 권익옹호 활동에도 앞장선 소신파로 소문나 있다. 여건이 허락하면 주 대법원 판사직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김 판사는 ‘고생 끝에 낙’(Light at the End of Tunnel)이라는 미국 속담을 좌우명으로 살아간다.
“한인 커뮤니티의 관심과 성원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저는 없을 겁니다. 한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제가 가진 모든 힘과 능력을 발휘해 주류사회에 우뚝 서는 자랑스런 코리안 아메리칸이 되겠습니다”는 김 판사의 말을 듣고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글 구성훈·사진 홍재철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