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변화를 선택했고,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지 불과 11개월만에 가주의 민주당 정부를 공화당 수중에 넘긴긴 채 주민들에 의해 강제 퇴출을 당했다. 기록적인 재정적자에 발목을 잡혀 정치인으로서는 차마 감당하기 힘든 일생일대의 치욕을 당한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캘리포니아주의 방백으로 한때 대통령 재목으로까지 꼽혔던 그의 몰락은 지난 2000년 여름, 캘리포니아의 정전과 함께 시작됐다. 2000년에 재선에 힘겹게 성공한 이후 불과 6개월만에 찾아온 전력위기는 가주의 재정상태를 망쳐놓았고, 하이텍 거품의 붕괴와 함께 들이닥친 불경기는 적자폭을 380억달러로 눈덩이처럼 불리는데 일조했다.
데이비스의 정치적 말로는 비참했지만, 출발은 산뜻했다.
1998년에 실시된 선거에서 중도주의를 표방하며 58%의 득표율로 주지사에 처음 당선됐을 당시 가주는 실리콘 밸리의 하이텍 붐을 타고 사상 유례없는 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화근이 됐다.
넘치는 재원에 의욕이 앞선 그는 교육환경 개선을 자신의 최우선 정책으로 선포하고 공립학교의 학급규모 축소와 성적향상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는 주법이 요구한 기준보다 무려 130억달러나 많은 예산을 교육부문에 추가로 지출했다.
그러나 재선후 수개월만인 2000년 6월, 전력공급사들이 가주의 전력수요 초과분 구입비를 지불하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자 전력도매업체들이 전력판매를 중단했고 이로 인해 가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정전사태를 겪어야 했다. 데이비스는 전력공급사들의 파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주예산을 동원했고 이로 인해 재정위기의 불씨가 지펴졌다.
결국 그는 유권자들의 분노를 사 지난 1911년에 법제화된 소환선거에 회부돼 임기중 도중하차의 쓴잔을 들어야 했다.
소환선거법이 제정된 이후 캘리포니아에서는 무려 31차례에 걸쳐 주지사를 퇴출시키려는 캠페인이 벌어졌으나 소환투표까지 이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0년간 거의 모든 주지사들을 대상으로 소환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현재 캘리포니아 외에 현재 17개 주에서 소환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그에 앞서 퇴출을 당한 방백은 1921년 낙마한 린 프레지어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유일하다.
<우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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