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目)에는 눈, 이(齒)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터를 방불하는 스포츠계에서는 ‘눈에는 눈’ 정도가 아니라 당한 것의 십배 이상은 갚아줄 오기는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예전 박찬호가 미국선수들에게 기죽기 싫어서 이단 옆차기로 대응하더니만 이번에는 김병현이 미국 관중들에게 기죽기 싫어서(?) 욕설스런 제스처로 한국민의 용기를 세계만방에 과시했다.
과연 잘한 일인가? 일부에서는 ‘김병현 당당하라’며 김병현 옹호론을 들고 나섰다. 김병현이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데 왜 김병현만 가지고 난리법썩들을 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김병현은 보스턴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운, 팀의 주전마무리 투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자세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같은 민족으로써 옹호는 하지 못할망정 다짜고짜 비난만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냐는 것이다. 차라리 보스턴처럼 인종차별이 심한 곳에서는 김병현처럼 따끔한 맛을 보여주어야 나름대로 당당히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언뜻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들려오는 소리다. 언론은 김병현이 잘할 때만 칭찬을 쏟아낼 것이 아니라 못할 때도 격려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한마디 ‘나도 잘한 게 많은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식의 코메디에 불과하다. 스포츠는 코메디가 아니다. 김병현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무대를 혼동해도 한참 혼동하고 있다. 경기장은 김병현의 안방이 아니다. 김병현은 야구를 연기로 먹고 사는 직업인이다. 무대의 배우가 어떻게 관중이 야유한다고 해서 얼굴을 붉히고 자신의 연기를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프로의식이 공황상태에 빠진 김병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행동이었다. 김병현은 팬 차원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을 저질렀다. 팬 없는 야구를 상상 할 수 있겠는가. 김병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만 생각했지 팬들의 입장에서는 단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듯 하다.
물론 김병현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재작년의 악몽이 채 가시기 전에 명예회복의 절호의 찬스에서 공한번 제대로 던져보지 못하고 패퇴한 김병현의 쓰라린 심정을 어떻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김병현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정당성 운운따위의 괴변일까. 김병현은 아직 갈 길이 먼 선수이다. 이제 겨우 프로 4년차, 무대가 어디가 되든 명예회복할 기회는 충분히 남아있다.
이기는 것도 좋지만 신사적으로 지는 것도 스포츠정신이다. 쓰라린 것을 삼킬 줄 아는 것도 스포츠의 용기다. 그러나 김병현이 월드시리즈 악몽 이후 최대의 고비에서 던진 공은 너무도 졸렬한 것이었다. 성장한 선수가 그것도 만인이 보는 자리에서 치욕스럽게 손가락을 치켜든 것은 너무도 실망스런 행동이었다. 물론 김병현이 즉각 사과, 일시적인 불은 껐지만 용서는 전적으로 팬들의 몫일 뿐이다.
아무튼 김병현은 앞으로 실력을 보여주는 것 밖에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게 됐다. 메이저리그는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고 해도 실력을 확증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살아날 방도가 없다. 샌프란시스코의 클로저 팀 오렐 역시 시즌 38세이브를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마지막 디비전 3차전에서 무너지자 방출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유독 김병현만 따돌린다는 생각은 피해망상적 편견이다. 메이저리그의 생리는 누구든 이기는 선수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잘하는 선수보다도 살아남는 선수가 되기가 더 힘든 것이 메이저리그라는 격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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